한국일보

가치관이 전도된 세상

2004-03-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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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정(회사원)

한국은 지난 12일 국회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로 사회가 무척 소요스러운 모양이다. 하기사, 문자 그대로 천정 56년만에 처음으로 하는 것이니 국회가 나라라도 망쳐놓을 무슨 큰 일이라도 저질러 놓은 것 같이 과잉반응을 할 만도 하다.

일찌기 기원전 4세기 경에 고대 희랍의 철학자 플레이토(Plato)는 ‘공화국(The Republic)’이라는 책을 제자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써내려가면서 인간의 본성은 원래가 너무 탐욕스러워서 자기가 지금 만들고 있는 이 제도도 실제 사회에서 잘 적용되리라고는 상당부분 의심을 하면서 썼다고 한다.


그는 한 사람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하면 절대적으로 부패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권력을 분산하고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을 서로 이루어야 부패로 가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후 거의 모든 오늘날의 공화국 체제에서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의 분립되어 견제와 감시를 하는 제도의 일환으로 한국의 헌법에도 국회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을 탄핵소추할 수 있고 사법부인 헌법재판소가 적법 심사를 거쳐 최종판정을 담당하도록 헌법에 명시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처음 당하는 한국 국민들은 탄핵소추는 과정의 시작인데 끝난 것처럼, 기소해 놓은 것인데 판결이 난 것처럼 재판관들이 기소장도 읽어보기도 전에 흥분해서 거리로 뛰쳐나와 마치 군중들이 공개재판으로 최후 판정이라도 낼듯이 야단을 떨고 사회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각 개인과 단체에 따라 탄핵소추를 보는 시각도 해석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운동경기에서도 그 사회가 정해놓은 규약에 따라서 사회의 혼란이 오지 않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그런 상식과 논리가 통하지 않고 사회의 가치관이 전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대통령의 화법을 굳이 빌리자면 지금의 한국사회의 논리나 가치관은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헌법에 따라 행동한 국회의원들에게는 헌정 중단을 시켰다고 하고 일부 의원들이 표결과정에서 난동과 추태만 부리지 않고 질서만 지켜줬더라면, 이번의 탄핵소추 가결은 의회 민주주의가 최고도로 발달된 정치선진국에나 가능한 제도이기에 한국의 의회민주주의도 이제 많이 성숙했음을 국제사회에 알려주는 좋은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의회 쿠데타니 민주주의가 조종을 했다고 몰아세우고 세계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추태를 부려서 나라 망신을 시키고, 또 안건이 통과된 후에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통곡해서 영문 모르는 시민들의 소요를 점화시킨 의원들은 사회의 질타를 받기는 커녕 자고 일어나 보니 영웅이 되어 있고, 법질서를 지킨 의원들은 역적 취급을 받고서는 예상 외의 큰 충격 탓인지 일부는 더듬이를 떼어버린 개미처럼 어디로 갈 지를 몰라 제 자리만 돌고 있고, 일부는 실성한 것처럼 법률사전에도 안 나오는 ‘탄핵소추 가결 취소’라는 둥 헛소리만 하면서 파랗게 질려있는 상황인데, 설상가상으로 소위 대학교수니 뭐니 하는 지식인들 조차도 ‘국민들은 이제 헌재가 외부의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가장 올바른 판정을 할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민주시민 될 책무’라고 설득하지 않고 오히려 소요하는 시민들 편에 편승해서 곡필이나 하고 아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라가 혼란스럽고 어지러울 때 형평을 유지하고 바른 길을 제시해야 할 언론매체들도 여당의 전당대회는 이미 방영해 주었으면서도 야당의 전당대회는 방송 못해주겠다는, 말하자면 어느 쪽이 센가, 어느쪽에 서야 유리한가를 계산해 보는 하나의 영리단체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나라가 어지럽고 혼돈하고 있을 때 각 방송사들은 흔쾌히 학생, 노동자, 여야의원 등 사회 각층의 반대론자들과 찬성론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정연한 논리 대결을 시켜서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면서 한편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는데 일조를 할 수 있을만도 하건만 오늘도 어느 쪽이 많은가, 어느쪽으로 대세가 기우는가 숫자만 헤아리고 촉각만 세우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북한에서 요즈음 더 신바람이 나있을 김정일 동무를 생각해 보면 그는 진작부터 한국에서 남파공작원들이 마음놓고 더 자유롭게 대남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보안법을 없애주기를 원했고 사상의 자유를 원했고 단속기관인 정보부를 없애고 반공세력인 보수층을 수구세력으로 몰아서 사회 일각에서 퇴출되기를 원했고, 또 원쑤의 당인 한나라당이 허물어
지기를 집요하게 원해 왔었다.

지금의 한국의 상황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는 셈이다. 그것은 정치나 사회의 전반 상황이 김정일이 원하는대로 틀림없이 되어가고 있는 사실 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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