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수선화

2004-03-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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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취재부 기자)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연못가에서 말라 죽은 나르시스(Narcissus)가 수선화로 피어났다는 서양 전설이 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냉정했던 나르시스가 에코(Echo)요정의 애절한 사랑마저 뿌리친 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에게 미움을 사 자신만을 사랑하는 형벌을 받게된 것.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자기애에 빠져있는 자신의 허상임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연못가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 전설이 유래가 되어 프랑스에서는 수선화의 꽃말을 ‘자신만을 사랑하는 어리석은 자’로 쓰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자기애’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메마른 현대인들을 보면 나르시스의 수선화가 떠오른다.


하지만 추운 겨울 눈 덮인 대지를 뚫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소생의 꽃으로도 유명한 수선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의 봄을 느끼게 하고 소생의 희망을 갖게 한다.

미 암 협회가 지난 85년부터 매년 암 퇴치를 위해 전개하고 있는 ‘수선화의 날(Daffodil Days)’은 바로 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소생의 희망을 전하는 뜻깊은 행사. ‘수선화의 날’ 행사는 미 암 협회의 가장 큰 연례기금모금행사로 지난해 뉴욕과 뉴저지 지역에서만 40만 송이 이상의 수선화가 판매됐다고 한다. 한인들의 참여는 아직까지 기대에 못 미치지는 수준이지만 예년보다 개인별 참여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미 암 협회 한인지부는 이번 행사를 통해 약 2,000달러가 모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행사에 참여한 단체는 퀸즈한인천주교회(주임신부 서상봉) 주일학교 어머니회와 한빛교회, 퀸즈한인장로교회, 씨앗 러닝센터 등으로 보다 많은 교회와 단체들의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

이번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한 한인은 “수선화의 날 행사를 통해 내가 아닌 이웃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며 “특히 한인사회가 암 환자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갖게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암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기 때문에 암 퇴치를 위한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며 곱게 핀 노란 수선화 화분을 구입해 갔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어리석은 자’의 수선화가 아닌 암 환자를 비롯, 소외된 이들에게 소생의 희망을 주는 사랑의 수선화를 떠올리며 이웃을 돌보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한인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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