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히틀러의 유해를 둘러싼 스탈린의 정치
2026-05-01 (금) 12:00:00
최윤필 / 한국일보 기자
1945년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 ‘총통 벙커(F?hrerbunker)’에서 자살했다. 전후 증언과 구소련 문서, 법의학 보고서 등에 따르면 그는 발터 권총으로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쐈다. 하루 전 아내 에바 브라운이 청산가리(시안화물) 캡슐로 숨진 것과 달리, 그는 주치의 베르너 하제(Werner Haase)의 조언에 따라 확실한 죽음을 원해 권총도 두 자루나 준비했을 만큼 철저했다고 한다. 사후 모욕을 모면하고자 부관들에게 시신을 완전 소각하라는 명령도 남겼다. 병사들은 그의 시신을 벙커 밖으로 옮겨 소각했지만, 소련의 포격에 쫓겨 서둘러 퇴각하느라 남은 유해를 가매장했다. 5월 4일 진주한 소련군은 유해를 발굴, 턱뼈와 치아 치과기록 대조를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
하지만 소련은 히틀러의 남은 유해를 여러 차례 비밀리에 이송-가매장하며 그의 사망 사실을 서방 연합국에 은폐했다. 총참모장이던 게오르기 주코프도 기자회견을 통해 히틀러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고, 스탈린 자신도 그해 7월 포츠담 회담에서 히틀러가 스페인이나 아르헨티나로 피신했을 것이라고 언급, 히틀러의 생존-도주설을 의도적으로 유포했다.
역설적으로 히틀러의 마지막 명령, 즉 시신이 발견되지 않게 하라던 지시를 스탈린이 이행한 셈이었다. 물론 스탈린의 의도는 서방 국가가 그를 숨겨주거나 보호하고 있다는 식의 의심과 불안, 내분을 조장하고, 불확실성과 공포로 정보-권력을 장악하려던 거였다. 45년 6월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8%는 히틀러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독일 엘베 강변의 마그데부르크에 암매장돼 있던 히틀러의 유해는 1970년 KGB 수장이던 유리 안드로포프의 지시로 재발굴돼 완전 소각-분쇄된 뒤 알려진 바 비더리츠 인근 강에 뿌려졌다. 다만 턱뼈와 두개골 조각은 지금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보관 중이지만, 2009년 미국 코네티컷대 DNA 검사 결과 두개골 조각은 40세 미만 여성의 뼈로 밝혀졌다.
<최윤필 / 한국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