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십자각] ‘장대한 분노’가 키운 불확실성

2026-04-30 (목) 12:00:00 조양준 서울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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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전쟁은 시간이 갈수록 ‘승자 없는 전쟁’이 돼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찌감치 승리를 선언했지만 승전국이라면 따라와야 할 정치적·외교적 지지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 언론과 대학이 이달 중 실시한 7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모두 40% 아래에 머물렀다. 동맹국들은 미국 요청에도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40개국 정상들은 17일(현지 시간) 열린 화상회의에서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다국적 군사력 투입은 전쟁 종료 후, 그것도 방어 임무에 국한한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구상해온 중동 질서 재편,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 역시 흔들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궤멸에 집착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혹은 제어할 의사가 없거나.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던 중동 국가들은 이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란이 승자인가. 트럼프 대통령 엄포처럼 ‘석기시대’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이란은 최고지도자를 포함한 핵심 수뇌부를 잃었고 군사력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주변국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은 중동 내 이란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전쟁 이후 득세했다는 이란 군부는 민심을 잃은 지 오래다. 이란을 승전국이라 부르기 어려운 이유다.


그 사이 피해자만 늘고 있다. 중국이 전쟁의 수혜자라는 평가도 있지만 다른 나라보다 에너지 사정이 조금 나은 것일 뿐이다. 3월 중국의 수출 증가율은 2.5%로 1~2월의 22%에서 크게 미끄러졌다. 세계대전 당시 군수물자 수출 특수를 누렸던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제임스 팔머 포린폴리시 부편집장은 “이란 전쟁은 미중 모두 패배하는 시나리오”라고 꼬집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에너지 수입이 막혀 경제적 피해가 큰 한국 같은 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미국 ‘장대한 분노’ 작전의 현주소다. 승패는커녕 전쟁 향방조차 예측하기 어렵다. 전투와 협상 모두 교착상태다. 미국과 이란 둘 다 내부적으로 전쟁파와 협상파로 갈라져 있다는 외신 보도는 그들의 혼란상을 짐작하게 한다. 이제 그만 전쟁을 끝내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승자도, 패자도, 심지어 앞으로의 계획도 불분명한 전쟁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중동에서 좌절감을 맛본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가 동맹국을 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부는 이미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역시 전시작전권 환수, 관세 문제, 대미 투자 등 굵직한 현안들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큰 변수가 더해졌다. 럭비공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은 익숙하지만 분노까지 더해진 럭비공이 어떻게 튈지는 아직 누구도 본 적이 없다. 이번 전쟁으로 더욱 가중된 불확실성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조양준 서울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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