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윌셔에서]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를 읽고

2026-04-30 (목) 12:00:00 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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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도리스 레싱은 여성의 삶과 내면을 정교하게 파고든 공로로 200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녀의 대표 단편 ‘19호실로 가다’를 최근에 읽었다. 이 작품은 1960년대에 쓰였지만, 그 안에 담긴 여성의 고독과 자아의 균열은 지금의 시간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읽는 동안 나는 자주 멈춰 서게 되었다. 주인공 수잔의 이야기가 낯선 타인의 서사가 아니라, 오래전 잊고 지낸 나의 기억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누구의 아내였고, 누구의 엄마였으며, 언제나 누군가의 삶 속에서 ‘역할’로 존재했다. 그러나 그 모든 이름들 사이에서 단 한 번도 ‘나’로 머무른 적이 없었던 사람. 그래서 그녀는 결국 19호실을 찾는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름,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표정으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그 작은 방을.

그 방은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과의 모든 끈을 잠시 내려놓고, 겨우 자신을 붙잡아보려는 마지막 몸짓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 수전은 비로소 자신을 느낀다.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 나 있던 나를 비로소 대면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장면들 속에서 내 삶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의 도리’라는 말 아래에서 살아온 시간들.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친구로서의 이름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정작 나는 얼마나 자주 나 자신의 이름을 불러 보았던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믿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늘 설명되지 않는 공허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나를 오래도록 뒤에 세워두고 살아온 흔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의 삶은 우리에게 낯설고 때로는 이기적으로 보인다. 자신을 먼저 세우고 관계 속에서도 각자의 공간을 지키려는 모습이 우리가 익숙했던 방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19호실로 가다》의 수잔을 떠올리며 이것을 다른 풍경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쩌면 그들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작은 방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리일 것이다.

물론 그들의 방식도 완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그들 또한 다음 세대를 보며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세대는 달라도 자신과 타인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은 모두에게 같은 과제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지금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에게는 19호실이 있는가? 세상에서 도망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모습 그대로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잠시 모든 이름을 내려놓고, 창조주 앞에 선 한 사람으로 머무를 수 있는 자리. 그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나’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19호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다시 열어야 하는 문인지도 모른다. 오래 기다려 준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그 문을 열고, 그 자리에서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 남은 삶은 더 나답게, 그리고 더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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