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유독 길었던 겨울의 잠에서 삼라만상이 깨어나 약동하는 4월이 왔다. 얼어붙었던 대지는 부드러운 생명의 숨결로 되살아나고, 나무들은 마치 오래 참았던 숨을 내쉬듯 연두색 새싹을 틔운다.
움츠렸던 가지는 기지개를 켜고, 햇살은 따뜻한 손길로 세상을 어루만진다. 자연의 이 놀라운 회복과 부활의 리듬은 우리 인간에게도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듯, 인간의 삶 또한 정체와 침체를 넘어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다. 특히 이민의 삶 속에서 수십 년을 쉼 없이 달려온 우리에게 이 봄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며, 삶의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는 하나의 영적·지적 계절이다.
사회학자 앨빈 토플러가 주장했던 제3의 물결인 정보화 시대와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컴퓨터와 인터넷,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이 현대인에게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지식의 홍수가 범람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6-3-3-4라는 형식적 학교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만으로도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오늘날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정보 문제는 단순히 정보의 양뿐만이 아니라, 그 속도와 격차이다.
누구는 최신 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하며 살아가고, 누구는 그 정보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뒤처진다. 이것이 바로 정보격차(digital divide)이며, 동시에 교육격차(educational divide)이다.
이 격차는 단순한 지식의 차이를 넘어 삶의 질, 경제적 기회, 사회적 참여,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까지 영향을 미친다. 젊은 시절의 배움과는 생존의 조건이 다르며 그 해답은 오직 평생학습뿐이다. 학습이 평생에 걸친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평생학습은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1)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 2)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지적 기반, 3)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 4) 정신적 건강과 자존감을 유지하는 수단, 등 특히 은퇴 이후의 삶에서 평생학습은 더욱 중요하다. 직업적 역할이 사라진 자리에 지적 성장과 공동체 참여가 들어오지 않으면, 인간은 쉽게 고립과 무력감에 빠진 정신질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로서 디아스포라인 우리는 지난 30년, 40년을 오로지 생존을 위해 언어의 장벽, 경제적 어려움, 문화적 충돌 속에서 쉼 없이 일하며 가족을 지켜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잃어버린 것도 많다.
배우고 싶었던 시간, 성장하고 싶었던 기회, 나 자신을 위한 여유, 이제는 그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할 때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 바로 다시 시작할 때이다.
KCS(Korean Community Services )와 같은 평생학습기관의 역할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 기관은 단순한 복지기관을 넘어 지적 공동체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KCS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로는 영어 교육 프로그램, 시민권 및 사회 적응 교육, 문화 및 예술 활동, 건강 및 복지 프로그램 등이며,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순한 교육을 넘어 삶을 다시 일으키는 플랫폼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은 KCS가 4월부터 새로 오픈하는 영어 북클럽이다. 이미 전직 언론인이 수년간 진행해 왔던 이 프로그램은 언어 능력 향상, 사고력 확장, 다양한 문화 이해, 공동체 형성 등, 동서고금의 명저를 매개로 사람들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다른 삶을 이해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자리였다. 이번에 평생학습기관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100세 시대에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건전하게 나이가 드는가이다. 계속 배우는 삶, 사회와 연결된 삶, 의미를 발견하는 삶, 타인과 나누는 삶, 이 모든 것은 평생학습을 통해서 가능하다. 배움이 멈추는 순간, 인간의 삶도 서서히 정지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용기로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서자.
평생학습의 길로, 공동체의 자리로, 그리고 더 깊은 인간다움의 세계로...그 문을 두드리는 것은 오직 우리의 결단뿐이다. “배움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이 4월, 다시 배우고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생명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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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전성결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