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실패가 마지막은 아니다’

2026-03-31 (화) 08:49:33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크게 작게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쩨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장에서 발췌)

베드로는 예수의 수제자였지만 실수를 반복하여 스승의 신뢰를 얻기 어려웠다. 경쟁의식을 가지고 성급하게 나서며 거짓 충성을 맹세한 일, 불리한 상황이 되자 세 번이나 배반한 일, 예수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단숨에 칼로 벤 무절제의 실수도 있었다.

앞장서서 열심을 내다가 상황이 불리해지면 추풍낙엽처럼 흔들리는 베드로는 지도자로선 적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베드로를 내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는 실수가 많은 베드로를 다시 불러 새 사명을 부여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분부는 베드로의 실패한 과거는 덮고, 베드로를 수제자로 세우신다는 미래 계획을 천명한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 깨달은 것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실패가 마지막이 아니다’라는 진리이다. 예수는 베드로가 이 진리를 확실하게 체득할 때 까지 수없이 반복하며 가르쳤다. 과거의 베드로의 실패는 미래에 베드로가 성취해야 할 사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세히 보라. 금이 가서 허물어져가는 구름다리의 경우 그 중간에 무거운 돌을 끼워 넣으므로 더 견고한 힘을 창출한다.


홀로코스트 유대인을 연구한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개를 죽이는 것이 쉽고, 개보다는 쥐나 개구리, 벌레를 죽이는 것이 훨씬 더 쉽다. 문제는 시선, 눈동자이다. 수용자의 눈에서 분명한 정체성과 주체(主體)를 발견할 때는 손쉽게 죽음을 집행할 수 없다.

수용자의 두 눈의 시선이 공허하거나 어두우면 죽음은 쉽게 다가온다.”
40년 동안 광야를 배회하며 살았던 모세가 불꽃이 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과 직면했을 때, 그의 눈은 휘광처럼 빛났다. 수제자 베드로가 십자가를 짊어 진 예수와 골고다 언덕에서 해어졌다가 다시 갈릴리 해변에서 만났을 때, 그의 눈은 관솔불처럼 뜨거웠다.

유다의 히스기아 왕 14년 때다. 앗수르의 지휘관 랍사게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후 히스기아를 협박하고 당장 항복을 요구했다. 히스기아는 이를 무시하고 선지자 이사야와 한 믿음이 되어 성전에 올라가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자로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하나님은 히스기아의 간구를 들으시고 벌떼 같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랍사게의 앗수르 군사를 바람에 날아가는 티끌처럼 흩으셨다. 당신은 리더인가. 하나님 앞에서 정체성과 주체의 눈빛을 잃지 않는다면, 실패는 결코 마지막은 아니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