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에 와서’
2026-03-31 (화) 12:00:00
신경림
별만 보자고 여기까지 와서 초원에 누웠건만,
어쩌자고 별 사이로 평생 내가 걷던 길이 보이나.
목로에 모여 앉았던 동무들이 보이고,
남루한 옷가지와 찌그러진 신발짝이 보이나,
별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말자고,
더 아름다운 것도 보지 말고 더 빛나는 것도 보지 말고,
오직 별만 보자고, 여기까지 와서 누웠건만,
어쩌자고 별 사이로 하늘을 가득 메운 별 사이로
담장 안에 숨어 피었던 복사꽃이 보이고,
진창을 건너가던 빨간 등불이 보이나.
별 사이로 하늘을 가득 메운 별 사이로 마지막엔
어쩌자고 철없이 여든을 넘긴 늙은이 하나 보이고,
오직 별만 보자고, 여기까지 와서 누웠건만.
‘고비에 와서’ - 신경림
별 볼 일 없는 곳에서, 별만 보이는 곳으로 가셨군요. 문명이 지운 별빛을 만나러, 야생의 초원으로 가셨군요. 별만 보는 데 실패하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보았군요. 당신은 실패라고 말씀하시지만, 별들은 또 제 할 일을 해 주었군요. 당신과 당신의 동무들이 어둠 속 진창을 걸어갈 때, 나침반이 되어주던 별들이 당신의 생애를 비추어 주었군요. 고비 고비 걸어온 낱낱의 발자국을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군요.
[시인 반칠환]
<신경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