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상] 오지랖

2026-03-27 (금) 07:51:08 안정수/용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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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은 본래 웃옷의 앞자락을 뜻하는 우리 말이지만 ‘오지랖 넓다’가 관용구로 사용될 때는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거나 간섭하는 행동을 비유하는 말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다.

집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매주 토요일에 산행을 한지도 20여년. 하루는 큰 호수가 있는 산 정상에 쓰레기가 조금 쌓여 있었다. “담당기관에서 알아서 치우겠지” 했지만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쓰레기는 계속 쌓여만 갔다.

내가 치워야지 하며 쓰레기 봉투 10개, 고무장갑, 집게, 소독 물수건을 들고 올라가니 Jayson 이라는 청년이 며칠 전에 친구가 사진을 찍어 보내서 청소하러 왔단다. 아내, 나, Jayson 셋이서 쓰레기를 봉투에 담았다. 9개나 나왔다.


지나가던 젊은 부부가 어떻게 할거냐고 묻자 Jayson이 자기가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가져 갈거라고. 했다. 여기 모아두면 담당기관에서 가져가는거 아니냐고 내가 물으니 다리보수, 나무 쓰러진 것은 치운다고 하면서 Sign을 가리킨다.

‘Carrie-in, Carrie-out’이라고. 젊은 부부가 3개 가지고 내려가겠다고 하고, 우리도 3개 가지고 가려는데 아내가 하는말이 무리란다. 그래서 각자 1개씩 가지고 매고, 지고, 같이 들고, 쉬고 또 쉬고 가는데 Jason이 4개를 끙끙 거리며 들고간다.

자연, 지구, 환경 관계 전공하고 졸업했는데 직장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거의 초죽음이 되어서 땀에 흠뻑 젖어 내려왔다.

힘들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다음주부터는 그때그때 가지고 내려오자 했는데 이후로는 전혀 쓰레기가 보이지 않았다. 긍정의 K-오지랖에 동참한 아내에게 고맙다. 날씨 따뜻해지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가에 분꽃씨를 여기저기 심으려 한다.

<안정수/용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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