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영아의 문화산책] 사랑이 있는 한, 클래식은 대중음악이다

2026-03-26 (목) 06:24:25 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YASMA7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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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흐마니노프에서 에릭 카르먼, 그리고 카르멘까지...

▶ 사랑이 이어 만든 음악의 흐름

클래식 음악을 화려한 콘서트홀에서나 듣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중적이지 않고, 매니아가 아닌 이상 우리와는 아주 멀리 있는 음악 세계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알고 보면 클래식 음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

예를 들어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장엄한 오프닝 장면에서 흐르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인간의 진화와 위대한 순간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같은 영화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장면을 우아한 춤처럼 만들어 준다. 또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 헬리콥터 공격 장면에 사용되어 전쟁의 광기와 아이러니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눈물의 날)’가 흐르며 인간의 죽음과 비극을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한다.

이처럼 클래식 음악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광고, 그리고 팝 음악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진다. 80년대 말 세계적으로 히트한 루 그램의 ‘Midnight Blue’는 베토벤의 ‘월광’을 모티브로 했다. 그에 앞서 비틀즈는 60년대에 같은 곡의 화성 진행을 거꾸로 활용해 ‘Because’라는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역시 클래식의 경계를 넘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살아난다. 대중에게 익숙한 팝송 속에서 그 선율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음악이 시간과 장르를 넘어 이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런 대중 음악 속의 클래식 음악이 순전히 우연일까?

필자의 책 ‘마음의 기억… 흔적’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절망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그는 교향곡 1번의 실패 이후 깊은 우울과 창작 불능에 빠졌고, 오랜 시간 음악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그를 지지해 준 사람들과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나탈리아 사티나가 있었다. 그들과의 신뢰와 조건 없는 사랑은 치료를 통해 조금씩 회복해 가는 과정 속에서 그로 하여금 다시 사람을 믿기 시작하게 했고, 삶을 다시 받아들이게 했다. 신뢰와 사랑이 그의 삶을 다시 단단하게 붙잡아 주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그가 다시 세상과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다시 음악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정점에서 완성된 곡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이후 발표된 교향곡 2번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협주곡 2번이 절망에서의 회복이라면, 교향곡 2번은 그 이후의 안정과 성숙, 그리고 더욱 깊어진 감정의 세계를 담고 있다. 이미 사랑과 삶의 균형을 되찾은 그는 더 길고 풍부한 선율로 자신의 내면을 펼쳐 보인다.

이 음악은 한 세기를 건너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진다. 에릭 카르먼은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공부한 음악가로, 젊은 시절 이미 밴드로 상업적 성공을 했으나 밴드 해체 후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풀어내기 시작했다. 교향곡 2번 3악장에서 출발한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을 바탕으로 한 ‘All by Myself’가 그것이다. 라흐마니노프를 모르던 사람들조차 이 멜로디를 어딘가에서 들은 듯 익숙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 위에 더해진 카르먼의 섬세한 표현은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들며 또 하나의 명곡으로 완성되었다.

두 곡 모두 사랑의 상실과 고독을 노래한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고백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그 바닥에는 같은 감정이 흐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율은 더없이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고통 속에서 태어난 음악은 오히려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된다.

그런데 카르먼이라는 이름은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단지 이름이 같아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에서 주인공 카르멘은 1막의 아리아 ‘하바네라’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L‘amour est un oiseau rebelle(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새)”라고.


사랑은 붙잡으려 하면 날아가고, 통제하려 하면 사라진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 감정 앞에서 무력해지고, 때로는 모든 것을 걸기도 한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도, 그 선율에서 태어난 노래들도, 그리고 카르멘의 이야기 역시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그렇게까지 사랑하려 하는가.

자유로운 마음과 진심 위에 쌓인 신뢰 속에서만 사랑은 의미가 있다. 사랑은 결코 일방적일 수 없고, 누구에게도 휘둘려서는 안 된다. 자유를 바탕으로 한 자신의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구속이 되고,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삶으로 이어질 뿐이다. 라흐마니노프가 절망 속에서 다시 음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다시 사랑을 받아들이고, 사람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의 힘은, 어쩌면 바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집착으로 변한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돈 호세가 끝내 카르멘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우리는 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 우리 곁에 있는 한, 음악은 사라지지 않을 거다.

<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YASMA7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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