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요 에세이] 풀뿌리를 씹으며 명상하기

2025-05-01 (목) 08:42:18 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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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책꽂이에 얌전히 있던 철학 책들 중 홍자성의 채근담을 펼쳐 본 건 몇십 년 만이다.

주어진 삶에 집중하며 살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가끔씩 생각났던 책 중 하나라 중년이 되어 제대로 읽어보기로 했다. 학창 시절에 읽었던 책을 기억하고 다시 읽고 싶은 건 쌓인 연륜과 인생살이를 겪어 이해하는 게 많아 그렇다.

지금부터 380년 전쯤 쓴 책 속에는 분명 진리가 있다. 부귀영화를 탐내지 않고 쓴 풀뿌리라도 달게 씹을 수 있는 겸손과 인내가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삶의 지혜를 가르친다. 풀뿌리를 씹는 마음으로 충고에 감사하고 긍정적인 밝은 마음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40년 전쯤 읽었던 책에 빠지니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젊은 열정이 피어오르고 좋은 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생을 잘 살든 아니든 우리에게 주어진 건 젊어서는 충실하게 학문을 익혀야 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즐거움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야채의 뿌리 깊은 이야기 속 가르침으로 세상 살아가는 일을 알아가며 깨우치고 배운다.
“항상 쓴 나물을 씹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한 왕 신민의 글에는 마음 깊이 새길만한 채근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자연을 벗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철학이 나오고 인생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후벼 파는 이야기들이 마음을 적실 때 습관처럼 생겼을지 모를 물욕을 버리고 명상 속에서 선해지고 싶어진다.

귀에 좋은 말, 눈에 좋은 것, 감탄고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말이다.
누구나 현실에 집착하지 않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깨닫지 못하는 삶을 채근하고 명상하며 자연과 친화력을 가지고 망중한을 갖는 지혜로운 이야기라 생각한다.

못할 것 같은 일도 시작하면 이루어진다더니 텃밭 가꾸기가 시작되었다.
미국에서도 유기농을 생활화하며 자연을 벗 삼는 사람들은 겨울이 긴 뉴욕에서 꽃샘추위가 가시면 모종 파는 곳을 찾아 봄 마중하느라 제법 할 일이 많다. 생명이 꿈틀거리던 봄날은 땅을 갈아 모종을 심을 때 진정 삶이 풍요로워진다.

수확을 얻을 때 “고섹의 가보트”를 듣는 즐거움은 마치 생명을 잉태한 기쁨같이 바이올린의 선율 따라 행복한 세로토닌이 나오는 것 같다.
야채를 씹을 때마다 채근담을 생각한다.

“젊어서는 화려함을 사모했으나 나이 들어서는 참선의 적막함에 깃들여 살았다”라고 홍자성은 말한다.
나이 들어갈수록 마음을 고요하게 명상하는 참선이 생활화돼야 한다.

자신을 낮추고 초연해지는 마음가짐은 명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자세다.
자연을 접하고 소통하며 먹거리들을 주는 행복감에 기쁨이 온다.

눈과 입과 귀가 바른 것을 보고 말하며 듣고 기뻐하며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나의 하루가 시작이다.

<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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