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는 4월을 생명의 부활과 희망의 계절로 노래했다. “달콤한 4월의 소나기가 메마른 대지를 적신다”는 그의 시에는 자연과 인간, 신앙이 어우러진 조화가 담겨 있다.
반면, 20세기의 시인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노래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피어나고, 기억과 욕망이 뒤섞인다는 그의 표현은, 되살아나는 생명이 오히려 고통을 환기하는 잔혹함을 말한다.
오늘의 미국 사회는 이 두 시인의 시선을 모두 떠올리게 한다. 봄이 왔고, 실업률은 3.8%로 낮게 유지되고 있으며, 주요 지수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체감 경기는 정반대다.
최근 미시간대학이 발표한 소비자 신뢰지수는 2024년 말 기준 69.7로, 팬데믹 기간보다도 낮은 수치를 보이며 심각한 위축 상태를 나타냈다. CNBC는 2025년 3월 보도에서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성향은 1952년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 배경에는 ‘미국 우선주의(MAGA)’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부터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무역 상대국들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며 관세 전쟁을 벌여 왔고, 재임하면서 그 전쟁은 극에 달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경제권의 충돌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것은 소비자와 중소기업이다. 관세 인상은 공급망에 부담을 주었고, 이는 기업의 원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펜데믹의 여파로 2023년 이후 미국 내 식료품 및 에너지 가격은 연간 7.5% 이상 상승했고(BLS CPI Summary, 2024년), 주택금리 인상까지 겹치면서 서민 가계의 소비 여력은 극도로 축소되었다. 소비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지출로 더 적은 상품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 결과, 미국 경제는 외형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체감 회복은 멀기만 하다. GDP 수치는 오르지만 소비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회복 없는 회복’의 딜레마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다자주의적 무역 체제의 복원이 시급하다.
미국은 동맹국 및 세계 주요국과의 신뢰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일방적인 관세와 탈세계화는 공급망을 왜곡시키고, 외교적 고립을 초래한다. 세계무역기구(WTO)나 기존 FTA 체계를 활용한 질서 회복이 미국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본다.
둘째, 소비자 중심의 경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기업 감세보다는 중산층과 서민의 가계지출을 지지할 수 있는 세제 개편, 공공요금 안정, 에너지 정책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소득 대비 실질 구매력이 계속 하락한다면 내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글로벌 리더십 회복을 위한 외교 전략이 요구된다.
강압보다는 협력의 외교, 갈등보다는 조율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나, 그 리더십은 타인의 신뢰 위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넷째, 지속 가능하고 혁신적인 미래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반도체, 바이오, AI, 친환경 에너지 등 미래 기술에 대한 민관 공동 투자와 리쇼어링 전략이 결합될 때, 미국 산업의 경쟁력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고난주간이고 부활절이 머지않다. T. S. 엘리엇의 표현처럼 4월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초서가 노래한 희망의 계절로 전환될 가능성 또한 여전히 살아 있다.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분열과 고립의 정책이 아닌, 협력과 책임의 리더십이 절실하기만 하다.
최고 지도자는 진정한 ‘위대한 미국’은 관세 장벽 위가 아니라, 세계와 함께 걸어가는 신뢰의 길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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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석/기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