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은 『침묵』의 저자인 엔도 슈사쿠(1923-1996)의 나이 일흔에 병마와 싸우며 쓴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의사로부터 아내의 암 선고를 듣는 이소베의 경우로 시작된다. 갑자기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에게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허허로움이 밀려온다.
“여보,” 그는 불러보았다. “어디로 간 거야?” 아내가 살아 있을 때는 이토록 절실한 기분으로 불러본 적이 없다. 그녀가 죽기까지 그는 대부분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일에 열중하고 가정은 등한시했다.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생이란 우선 열심히 일하는 것이며 그런 남편의 모습을 아내 또한 좋아하리라 생각해 왔던 것이다.
아내가 죽기 직전에 남편에게 유언하기를 이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다시 태어날 테니 꼭 찾아달라고 한다. 그때부터 이소베는 삶과 죽음의 윤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 무렵 인도의 바라나시 근처에 사는 한 소녀가 전생에 일본인으로 살았다고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소베는 틀림없이 죽은 아내가 그곳에 환생한 것이라 믿고 그 소녀를 만나기 위해 인도로 떠난다.
‘이소베의 경우’처럼 미쓰코, 누마다, 기구치, 오쓰의 경우에 대해서도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각자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은 인도 단체 여행을 계기로 서로 알게 된다.
미쓰코의 경우, 대학 시절에 가톨릭 신자였던 오쓰를 유혹해서 그가 믿는 신 따위는 내다 버리라고 골려 주다가 그를 버린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혼했으나 삶의 공허를 견디지 못해 이혼한 후 신부가 된 오쓰를 찾아 인도에 온다. 누마다의 경우는 부부라 해도 서로 용해될 수 없는 고독이 있음을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경험한다. 만약 인간이 진심으로 이야기 나누는 대상을 신이라 한다면, 그에게 신은 애완견이었던 검둥이이거나 그가 병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구관조였다. 기구치의 경우는 태평양 전쟁 때 미얀마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은 동료의 인육까지 먹어야 했던 처참한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이렇게 저마다의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사는 그들은 삶과 죽의 의미를 찾아 인도로 간다.
주인공인 오쓰는 대학 시절, 미쓰코에게 희롱당한 아픈 상처를 안은 채 신학도의 길을 선택한다. 훗날 그는 다시 만나게 된 그녀에게 “내가 신을 버리려 해도… 신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당신한테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인간에게 버림받은 그 사람(예수)의 고뇌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는 범신론자라는 이유로 실패한 신부지만 힌두교의 이슈람(수도원 같은 곳)에서 그를 받아줘서 화장터로 시신을 나르는 일을 한다. 진실로 그(예수)가 우리의 병고를 짊어진 것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는 모습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슬픔이 그의 등에 업혀 이 ‘깊은 강’으로 향했을까. 오쓰는 그들이 누군지 어떤 과거를 지녔는지 모른다. 그가 알고 있는 건 그들이 하나같이 이 나라에서는 아웃 카스트(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 최하위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버려진 계층의 사람들이라는 사실뿐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1971년 인도를 여행한 후에 쓴 글이다. 그는 ‘환생’에 대한 인간의 간절한 염원을 보여주기 위해 갠지스강을 상징적으로 택했다. 사람들이 죽은 뒤, 그곳에 뿌려지기 위해 모여드는 강, 이 ‘깊은 강’은 그런 죽은 자들을 품에 안고 묵묵히 흘러간다. 그곳에 가면 사람마다 각자의 아픔을 짊어지고 이 강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 가까이 간신히 당도했다가 길가에 쓰러진 사람들도 많다. 시신마다 인생의 괴로움과 눈물로 얼룩져 있다.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든, 아웃 카스트의 빈민도, 수상이었던 인디라 간디도, 신분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재를 품어 안고 흘러가는 갠지스강, 그곳에서 비로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평화를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서, 각자의 상처를 안고 인도로 여행 온 그들은 강한 인상을 받는다.
작가는 『깊은 강』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종교의 장벽을 넘어 모든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보이려고 했다. 그는 ‘오쓰’를 통해 신이란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 안에 있으며 인간과 수목과 화초도 감싸는 거대한 생명이라고 정의한다. 신부 자격을 얻기 위한 구두시험에서도 신은 유럽의 교회뿐만 아니라 유대교에도, 불교에도, 힌두교에도 계신다고 믿는다는 자신의 신념을 피력한다.
엔도는 1966년, 17세기 일본 막부의 혹독한 기독교 탄압에 맞선 포르투갈 선교사의 배교를 정면으로 다룬 『침묵』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나 좌절되었다. 이 책은 세계 13개국 언어로 번역된 화제작이 되었고 20세기 기독교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깊은 강』을 집필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가 스스로 말했듯이 일본의 진흙 늪에 자신이 고른 종교의 씨앗을 심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생을 마친 흔치 않은 작가였다. 그가 죽거든 관 속에 『침묵』과 『깊은 강』을 한 권씩 넣어 달라고 했고, 잠들어 있는 엔도의 곁을 지금도 두 작품이 지키고 있다.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나가사키 소토메 마을에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 있다. 그곳의 한 귀퉁이 작은 돌에 새겨진 엔도의 글귀인 “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르릅니다.”라고 새겨진 침묵의 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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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양희 워싱턴 문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