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출근길, 로드킬

2025-10-30 (목) 07:48:27 정재욱 알렉산드리아,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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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동네를 빠져나와
파크웨이를 탄다
파크, 공원, 웨이, 길,
포토맥강을 따라난 강변도로

십분 남짓 눈에 들어오는
숲과 하늘과 강은 온통 내것
라디오에서는 내가 모르는
작곡가가 남긴 선율이 흐르고
좋구나 이 가을
나는 사치스런 감탄을 삼키는데
왼쪽 숲에서 점 하나 튀어나온다

악셀 밟아 앞서지도
브레이크 밟아 멈추지도
못하는 순간의 무력
눈만 질끈 감는다
음악마저 멈춘 짧은 고요


지나갔구나
그래도 못 미더워 백미러를 본다
다행히 지나갔구나

망할 놈의 다람쥐새끼
안도의 한숨이 그제사 욕으로 터진다

미친놈 길을 왜 건너
뒤지려고
뒤지려고…
길, 로드, 뒤지다, 킬

드드득
바퀴에서 페달로,
신발창으로 전해지던
로드킬의 기억
십수 년이 지나도
스멀스멀 종아리에 남아있는
흉한 꿈을 털어내듯

욕을, 욕을 해댄다

멍청한 놈
여기도 숲
거기도 숲인데
도대체 왜 건너는 거야
바보 같은 놈
미친 놈

태평양을 건너온 놈이
이차선 도로를 건넌 놈에게

<정재욱 알렉산드리아,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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