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래주의자 트럼프, 역대 美정부 비확산 기조에도 韓 요청에 전향적
▶ 동맹역량 키워 中·北위협 ‘美대신 견제’ 의도…韓자주국방력 강화 기조와 부합

(경주=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한국시간)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공식 환영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주한미군 감축 등으로 한국의 안보가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의 각종 숙원 사업 추진을 통해 자주 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여지도 있어 보인다.
동맹의 군사 역량을 키워 자체 안보를 책임지게 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 기조와, 무역 등 경제 이슈와 안보를 연계해 협상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지향성' 등이 한국 현 정부의 자주국방 역량 강화 기치와 맞아 떨어지면서 원자력 추진 잠수함 확보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안보 분야의 숙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기대되고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회담 다음 날인 지난 30일(한국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원자력 에너지를 동력으로 활동하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현재 한국이 운영하는 디젤 잠수함보다 오랜 기간 은밀히 잠항할 수 있어 역대 정부에서도 원했으나 개발에 필요한 소형 원자로와 농축 우라늄 연료를 확보하려면 미국의 동의가 필요했다.
미국은 전임 바이든 행정부 때인 2021년 오커스(AUKUS) 협정을 통해 호주에는 재래식으로 무장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 기술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이런 협력을 한국 등 다른 나라로 확대하는 데 부정적이었다.
원자력 잠수함은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술에 속하는 데다 미국의 전통적인 핵 비확산 기조를 고려하면 동의를 받기가 매우 어렵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SNS 글에서 한국과의 무역 합의와 동맹관계에 만족을 표하며 이를 단번에 승인했다.
정부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이 요청해온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정부는 독자 핵무기 개발이 목적이 아니며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핵연료의 안정적인 확보와 처분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는 안보 측면에서 잠재적인 함의가 없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연합사령부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에서 한국군으로 이양하는 데도 이전 행정부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지난 29일 기내 간담회에서 이재명 정부의 전작권 전환 추진에 대해 "훌륭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로이터]
한미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11월 전작권을 2012년 4월까지 전환하는 데 합의했으나, 이명박 정부 때 2015년 12월로 연기했고,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에는 조건 충족 시 전환하기로 다시 합의했다.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한국의 군사적 능력 확보 등 3가지 '조건'을 먼저 충족해야 전환한다는 합의 때문에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재명 정부는 5년 임기 내 전작권 환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작권 전환에 적극적인 데에는 동맹이 자국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면 안된다는 기조가 깔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등 첨단 군사력 개발을 용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동맹 방어에 자원을 투입하기는 싫으나 인도·태평양 지역에 걸린 국익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맹의 군사 역량을 키워 중국과 북한 등의 위협을 견제하는 데 동맹국이 더 큰 역할을 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우리 동맹의 역량이 늘어날수록 좋다"면서 "한국은 우리 병력에 훌륭한 주둔국일 뿐 아니라 (안보를) 주도하고 싶어 하며 그럴 의지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에 입항한 미 원자력 추진 잠수함 컬럼비아함 [연합뉴스 자료사진]
특히 원자력 잠수함의 경우 광활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갈수록 강해지는 중국의 해군력에 대항하는 데 필수적인 자산으로 평가받지만, 미국의 방위산업계는 미군에 필요한 최소 수량인 연간 2척의 버지니아급 원자력 잠수함도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약 70척으로 중국보다 5배 이상 많지만, 중국이 빠르게 따라잡고 있으며 중국은 더 조용하고, 빠르며, 첨단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디젤 추진 잠수함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승인한 원자력 잠수함 건조와 핵연료 재처리 등이 역대 미국 행정부의 핵 비확산 기조와 엇박자를 낼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정권을 초월한 정책의 연속성을 100% 장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호주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 원자력 잠수함은 해결해야 할 규제·기술적 문제가 많아 미국 대통령의 4년 임기 내에 끝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며 차기 미국 정권의 지속적인 지지가 필요해 보인다.
미국은 전임 바이든 행정부인 2021년에 영국, 호주와 함께 오커스(AUKUS) 안보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 협정의 핵심은 호주에 재래식으로 무장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30년대 초부터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최대 5척을 호주에 판매하기로 했으며, 호주와 영국은 미국의 기술을 도입한 핵잠수함을 공동 개발해 각자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한 뒤 2030년대 후반 영국에, 2040년대 초반 호주에 첫 잠수함을 인도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핵잠수함 기술 이전에 필요한 미국 내 규제 정비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고, 미국이 자국에 필요한 핵잠수함조차 제때 건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목표한 시기를 맞출 수 있겠냐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가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 공개된 계획은 없지만, 오커스 사례를 보면 그 실행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