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자선 차원에서 러시아에 탄약과 병력을 기증한 것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었던가. 그 반대급부는 그러면 무엇일까.
푸틴은 김정은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핵을 포함한 치명적 고도 군사기술 이전일까, 이는 위험한 새로운 군사동맹결성의 증거로 보아야 할까. 그 다음에 오는 것은 그러면….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워싱턴이 공식 확인했다. 이후 미국의 주요언론들이 계속 던지고 있는 질문으로 이는 다름이 아니라 워싱턴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보도다.
방화에, 사보타지에, 암살에, 흑색선전에, 사이버공격에, 테러지원에, 쿠데타 사주…. 또 뭐가 있더라.
뭐랄까. 사이코패스를 방불케 하는 방화범이 시도 때도 없이 종횡무진 날뛰며 사방에 불을 지르고 있다고 할까. 이게 우크라이나 전쟁 3년차에 접어든 시점에서 유럽에서, 중동에서, 또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 독일에서 미군 시설과 또 다른 타깃에 대한 공격혐의로 2명의 독일계 러시아 국적자가 체포됐다. 7월에는 독일 최대 방산 업체 라인메탈 대표에 대한 암살기도가 있었다. 9월에는 스웨덴 스톡홀름 공항에서 드론 공격 사건이 발생했다. 폴란드에서는 러시아 해커들의 침투로 정치, 군사, 경제 전산망이 한동안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영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방화, 암살 등 비밀파괴공작 사건들이다. 그 배후에는 러시아연방군 정보총국(GRU)이. 그리고 더 깊숙이에는 푸틴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영국, 독일 등 정보당국의 지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더 두드러진 현상으로 러시아정보원들은 마치 미친 개 같은 광폭성을 보이며 동시다발적으로 날뛰고 있다는 것이 유럽의 정보당국자들의 지적이다.
러시아의 검은 손은 유럽으로만 국한된 게 아니다. 크렘린의 사주로 아프리카에서는 잇단 쿠데타가 발생, 서방세력이 축출되는 등 중동, 그리고 대서양 건너 미국에까지 뻗치고 있다.
‘푸틴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미국에 동시다발적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미 정보당국자를 인용한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다. 미국에서 러시아의 비밀파괴공작은 유럽 등과는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흑색선전, 역정보 작전, 선거개입 등이 그 형태다.
이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개되는 푸틴 러시아의 비밀파괴공작. 이는 냉정한 실리 계산에 따른 냉전시대의 소련형 보다는 폭력적인 문화혁명시대의 마오쩌둥형에 더 가깝다는 분석이다.
무엇이 푸틴 러시아를 이 같은 광폭행보로 몰아가고 있나. 한 마디로 절박감이다.
당초 길어야 2~3주면 작전종료가 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쏟아 부은 전비만 수백, 아니 수천억 달러에 이른다. 전차 등 전체 기갑 전력의 2/3가 손실됐다. 흑해 함대도 절반이 바다에 가라앉았다. 사상자 수는 70만을 헤아린다. 침공 2년 반이 지난 현재 러시아군의 성적표다.
상황이 점차 절박해지고 있다. 헤쳐 나갈 묘수가 없을까. 판 전체를 흔들어 대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 2, 제 3의 전선을 열어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는 거다.
2023년 10월 7일, 푸틴의 71세 생일을 맞아 하마스는 큰 선물을 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대대적 테러공격을 퍼부은 것. 이를 신호로 헤즈볼라는 북쪽에서 예멘의 후티 반군은 홍해에서 공격에 나섰다. 중동지역에서 제2의 전선이 열린 것이다.
상황은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대대적 반격에 하마스, 헤즈볼라 등 이란의 사주를 받고 있는 이른바 ‘저항의 축’ 세력은 궤멸적 상황에 몰렸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하루 1200명 이상의 병력이 손실되고 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병력이 고갈될 판이다.
상황이 아주 절박하다. 또 다른 묘수는 없을까. 있다. 사실상의 군사동맹 체결과 함께 북한의 파병을 받아들이는 거다. 돈과 에너지 공급과 고도 군사기술 이전을 그 대가로 지불하면서.
여기에는 다른 노림수도 들어 있다. ‘유럽에서의 긴장 상황을 중동으로, 더 나가 동아시아로 수출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전통적으로 미국의 텃밭지역인 동아시아의 안보지형을 흐트러뜨리는 것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분석이다.
‘푸틴은 중동에 이어 한반도에서의 긴장 고조는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에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곳에서 또 다른 전선이 열릴 경우 미국과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이어지는 분석이다.
푸틴이 지난25일 러시아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사시 한반도에 파병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도 이를 뒷밭침하고 있다. 그러니까 김정은과의 동맹체결에 따른 북한 군 러시아 파병에는 중동지역에 이어 동아시아에서 또 한 차례 대(大)방화를 유발시켜 서방의 힘을 분산시키는 노림이 숨겨져 있다는 분석이다.
대처 방안은 그러면…. 뭔가가 뇌리를 스친다. ‘레짐 체인지’, ‘참수작전’ 등의 단어다. 사방에 불을 지르고 다니는 사이코패스를 더 이상 용납 할 수 없다. 이 같은 국제적 컨센서스가 굳어질 때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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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