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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악(次次惡)’의 선택과 미국의 대선

2024-11-11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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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따라 투표장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꺼져가고 있고 인류문명은 참담한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월 스트리트 저널의 월터 러셀 미드가 2024년 11월 5일 미국 대 통령 선거의 날을 맞아 밝힌 소회다.

‘트럼프나, 해리스 두 후보 모두가 현재 미국이 당면한 지정학적 상황이 요구하는 외교적 기량이나 전략적 비전은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발걸음은 더 무겁기만….’ 계속 이어지는 술회다.

부분적인 개표부정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패배를 시인하고 깨끗이 물러섰다. 1960 대선 시 리처드 닉슨이 보여준 품격이다. 40년 후 알 고어도 미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재개표를 요구하지 않고 아름답게 물러섰다. 이런 정치인은 이제는 멸종이 되다시피 했다.


끝가지 물고 뜯는 파당적 정치 풍토에서 최선의 선택은 고사하고 차악의 선택도 어려워지고 있는 게 미국의 대선이라는 게 그의 한탄이다.

정치 혐오증세가 만연하고 있다고 할까. 그런 가운데 치러진 올해의 대선. 그 결과는 트럼프의 압승으로 드러났다. 무엇이 그의 승리를 가져왔나.

‘전쟁, 인플레이션, 워키즘(wokeism)이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을 도왔다.’ 정치평론가 데이비드 골드먼의 지적이다.

굳이 통계수치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기만 하는 물가는 누구나 절감하고 있다. 그러니 인플레이션이 표심의 향방에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워키즘은 어떻게 트럼프 승리를 도왔나. ‘Enough is enough.’ 워키즘으로 대별되는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좌파의 이른바 문화혁명 드라이브가 도를 넘어섰다. 그 반감이 확산되면서다.

2020년 5월 25일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했다. 바로 번진 게 BLM(Black Lives Matter)시위다. 이와 함께 PC캠페인도 확산되면서 좌파의 전방위적 문화혁명 공세가 펼쳐졌다.

미국 사회는 동성애자간의 결혼까지는 받아들였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갔다. 초등학교 학생에게까지 부모에 알리지도 않고 성 정체성 교육을 시키는 등.


그 워키즘을 여전히 대세로 착각했다. 그리고 그 흐름에 지나칠 정도로 편승한 것이 해리스진영의 선거 캠페인이었다. 결과는 중도 층의 이탈이다. 진보성향의 뉴욕타임스조차 연방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휩쓴 이번 선거 결과는 과도한 ‘깨어 있음(woke를 빗댄 말)’을 강조한 PC주의에 미국은 지쳐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사실임을 입증했다는 논평을 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로 이어진 ‘영원한 전쟁’종식을 어젠다로 제시했다. ‘…그 때만은 못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을 내건 트럼프의 공약은 표 몰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골드먼의 진단이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이 두 개의 전쟁 외에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를 전쟁에 대해 미국 사회 전반에 깔린 위기감은 트럼프 백악관 재입성에 보다 큰 잠재적 변수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상당수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러시아, 차이나, 이란, 예맨, 가자, 이스라엘,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수단, 나토, 북한, 우크라이나. 웨스트아프리카, 그리고 특히 미국. 이 모두는 전쟁 중에 있거나 전시체제에 있는 나라들이다.’ 브뤼셀 시그널지의 지적이다.

이 목록에 머지않아 또 다른 나라들이 첨가될 수 있다. 무엇을 말하나. 오는1월 20일 백악관에 입성하는 제 47대 미국 대통령은 선거 승리의 도취감은 잠깐, 곧바로 미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한 번 가정을 해본다. 3개 전선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했다. 푸틴과 하마스에 이어 시진핑의 중국도 도발을 해온 것이다. 미군통수권자는 마침 해리스다. 문제는 해리스는 안보와 해외정책에 문외한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그런 그녀가 주요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트럼프는 결코 나이스한 인물이 아니다. 툭하면 거짓말이나 해대는 지겨운 인물이다. 그렇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메어리 포핀스를 백악관 주인으로 모셔 들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전쟁 억지 메카니즘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지적이다. 그 한 예가 2017년의 시리아 폭격이다.

트럼프는 바샤르 알-아사드가 자국민에게 또 다시 화학무기 사용을 할 경우 보복이 따를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그 레드 라인을 넘어섰다. 그러자 공습을 명령, 응징에 들어가 러시아 용병인 바그너 그룹 대원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레드라인을 설정하고도 무시되자 그냥 뒤로 물러선 오바마,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해오자 미국은 참전하지 않을 것이란 발언부터 한 바이든의 행보와 크게 대조된다는 것.

요약하면 이렇다. 어차피 차악도 아닌 차차악의 선택이 대선이라면 그나마 덜 실망적인 트럼프 선택으로 비상시기를 맞아 미국의 집단지성은 작동했다는 거다. 맞는 진단인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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