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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정어리가 무리를 짓는 이유’

2024-10-21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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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는 몇 만 마리로 이루어진 큰 무리를 지어 산다. 최근에는 대형 수족관에서도 거대한 정어리 무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먹이를 주면 무리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일명 ‘정어리 토네이도’로 수족관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수족관에 사는 정어리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무리를 짓지 않는다고 한다. 수족관에는 천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어리가 이유 없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천적에 대항하기 위해 무리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아름다운 약자들’ 중에서)

약자가 천적을 피하는 방법 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군집협력형태를 갖추는 것이다. 히말라야 산맥을 횡단하는 줄기러기는 ‘V' 자 형태로 몇 천 마일을 쉬지 않고 비행한다.


’하나는 전체를 위한다는 공동체 정신‘으로 특이한 편대는 형성된다. 선두에는 젊은 청년 줄기러기가 자리 잡는다. 그 뒤에는 노약자와 어린아이가 따른다. 맨 뒤에는 경험이 많은 부모 세대가 뒤따르면서 방향을 지시한다.

맨 앞에 선 젊은이들이 일으킨 바람은 몇 배의 부력(浮力) 에너지로 변환되어 뒤따라오는 노약자와 어린이에게 전달된다. 세찬 앞바람을 맞으며 날아가는 젊은 줄기러기는 에너지 분배를 위해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면서 날아간다. 협력 스위치가 천애(天涯)의 히말라야 횡단의 비밀이다.

왜 회색 늑대 무리에게는 내부 반란이나 이기주의자가 없을까. 왜 혹독한 추위가 닥쳐오면 야생동물의 위계질서는 더 확고해지는 것일까. 왜 사슴이나 영양 같이 기사도 정신이 풍부한 동물은 이 세상에서 계속 번창하는 것일까. 이들이 강한 포식자 앞에서 협력의 정신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정치적 동화의 신흥 세력으로 굴기하는 페르시아 제국 치하에서도 약소 포로민족 이스라엘은 신비하게 살아남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신앙협력’의 힘이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등장한 협력리더십의 롤모델(role model)인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새로 편찬한 신명기를 동족에게 널리 알리기로 결심했다.

이 소식을 듣고 모든 백성은 다시 복구된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재편집된 신명기 말씀이 고향의 언어 아람어로 낭독되었다. 그 순간 이스라엘 백성은 전율했고 회개했다.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가 되었다. 피포로(被捕虜)의식으로 가득 찼던 유다 민족은 ‘종교적 초사회성’을 지닌 디아스포라 글로벌 국가로 새롭게 탄생했다.

협력과 동역의 원리는 하나님, 인간,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서 거대한 생태계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시스템의 근간을 이룬다, 누가 탁월한 사람이며, 누가 최고의 리더인가. 협력을 이끌어 낼 줄도 알고, 남에게 기꺼이 협력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아브라함 헤셀은 말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이 필요하시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 동역관계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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