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빈손 국회’를 칭송함

2024-08-06 (화) 신석환/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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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1일자로 배달된 한국일보 한국판에 큼직한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다. “기업이면 벌써 망했을 빈손 국회” 오늘날의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제목이었다.

요약하자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하는 일은 실로 절망적이라는 기사다. 보도를 보니 22대 국회는 개원 후 두 달 동안 의원의 직무인 법안 발의 건수는 2,370건으로 얼핏 보면 대단한 성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2,365건은 발의 즉시 폐기 처분되고 5건만 본회를 통과했다는 것이다.

300명 의원이 한 일이 두 달간 다섯 건의 법안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더 기막힌 일은 그 다섯 개 법안도 생산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곧 거부권에 의해 사라질 허무한 여야투쟁의 산물이었을 뿐이다.


22대 국회의 하는 일은 21대에 이어 ‘탄핵’이라는 단어의 남발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후 ‘탄핵’은 대한민국의 유행어가 되었다. 반장도 탄핵, 이장도 탄핵, 그러다가 엄마 아빠도 탄핵할 판이다.

국회는 여야의 끝없는 대립과 싸움, 저급한 인간들이 맥락 없이 고함만 지르는 어이 상실의 놀이터가 되었고 상식과는 인연 없는 자들이 서식하는 운동장이 되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의원이 되었는가. 지연 학연 등 온갖 인연과 당파에 매몰된 우매한 유권자들이 “에라 모르겠다”식으로 뽑아준 덕이다.

영국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은 칼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양의 저녁 식사에 의해 죽는다.” 거하게 먹고 마시는 저녁 식사가 나를 죽인다는 뜻인데, K-Food와 먹방과 맛집이 과하게 횡행하는 대한민국이 유의해야할 속담이 아닌가. 나아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타산지석으로 새겨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한국 의원이 누리는 온갖 혜택은 너무나 풍요로운 만찬일 것이다. 저들의 인격과 수준, 그리고 하는 일에 비해 국가는 턱없는 돈과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 먹거리가 국회의원을 죽이는 너무나 풍성한 저녁식사다.

그러나 그렇게 먹고 마시게 하는 나라의 은혜에 비례하여 괄목할만한 일과 업적을 내놓는다면 그 성찬을 얼마든지 즐겨도 좋다. 허나, 저들의 언행을 보라. 일례로 소위 청문회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저들의 저급한 수준은 가히 목불인견이다.

청문을 받는 사람들에 비해 청문하는 자들의 수준은 미안하지만 가관이다. 어지간한 인격이라면 의원들의 부박한 언사에 얼굴이 달아오를 지경이다.

의원의 30%이상이 전과자에, 정녕 민주화 운동의 주체인지 족보가 의심스런 이들까지 더해 번번이 판을 깨는 청문회에 무슨 정연한 논박과 질의를 보겠는가. 연목구어와 다름 아니다.

하여, 한국일보의 타이틀을 보며 모처럼 크게 웃었다. “그래! 이거지. 빈손이지!” 무슨 말인가. 신문기사의 행간은 의원들이 너무 일을 하지 않아 빈손이라는 지적이었지만 그 기사를 보는 필자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는 결론을 이미 내렸다. 차라리 싸움도 하지 말고, 탄핵도 업적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빈손으로 놀면 좋겠다는 뜻이다.

사자나 늑대가 사는 동물 세계에서 로맨스는 기대하지 말라는 경구가 있다. 국회의사당이라는 정글에서 사람다운 인격자를 기대하지 말자. 3권 분립이라는 허울 좋은 민주주의 원칙을 위해 그 엄청난 재정을 들여 의원을 만들었으나 “빈손”으로 임기를 채우는 무풍지대가 훨씬 바람직하다는 국민적 여망(?)을 저버리지 말기 바란다.

<신석환/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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