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팔할(八割)을 이미 바람에 날려버린 노인. 소유재산이라고는 맨하탄의 방한개 짜리 아파트 한채와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작은 지갑 하나. 그래도 난 어느때보다도 행복하다. 왜? 많은 것에서 벗어났고 줄이고 버리고 내려놓아 삶의 짐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리라. 서글프거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지금이 내 인생의 절정기요, 황금기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한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니, 그 괴로움의 바다를 헤엄쳐 온 고통의 시간들도 훗날(오늘)의 나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셨던 쓴 보약이었구나를 이제와서야 깨닫는다.
그런 것들을 겪어보지 못했던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란걸 죽을 때까지 맛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지난 날 그시절, 애타게 부르짖는 나의 기도에 침묵하며 지켜만 보시다가 때가 이르름에 비로서 응답하신 하나님의 그 깊은 뜻과 은혜에 감사한다. 그 간증을 독자들에게 “Pass it on(네가 받은 그대로 전해주라)“할 의무감 마저 느끼지만 접는다.
“심령(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3절) 여기서 ‘가난한 자‘는 물질적 가난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자아(自我)가 부서진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이 가진 물질로도, 명예로도, 사랑으로도, 권세로도 행복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긍휼(矜恤)과 은혜에 전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반면, 불교에서의 행복이란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 즉 니르바나(열반涅槃)에 이르기위해 고집멸도(苦集滅道), 색즉시공(色卽是空), 일체개고(一切皆苦). 즉, 괴로움, 고통, 욕망, 집착, 번뇌등에서 벗어난 해탈(解脫)을 추구한다. 이를 스스로의 노력과 수행을 통한 깨달음으로 행복을 얻고자 한다.
이와같이 기독교는 타력구원의 종교이고, 불교는 자력구원의 종교이다. 무신론자였던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그의 [인생론]에서 기독교보다 불교사상을 더 두둔했던 철학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소품과 부록 = 행복론과 인생론’은 젊었을 때 한번쯤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는 [행복론]에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의지’라고 주장하며, 행복의 조건을 세 가지로 나누어 제시한다. 1, 인간을 이루는 것, 즉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인격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성, 예지가 포함된다. 2,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 즉, 재산과 소유물 등 3,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 즉, 타인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들, 명예, 지위, 명성등으로 나누어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을 풀어놓는다.
그의 [행복론]을 요약하면, # 행복을 위해서는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건강해야 즐길 수 있고, 명랑해 질 수 있다. # 행복은 자기 내부에서 찾아야지 외부에서 찾으려 하면 안 된다. 명예, 사교 따위는 본인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변수이기에 거기서 행복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기질에 맞는 일을 찾아 매진하고 예술과 문화, 음악을 즐기며 여유를 가지고 고독을 즐기라.
40대까지 염세주의에 빠졌던 쇼펜하우어가 후반기를 비교적 행복하게 살다가 생을 마친것(72세)것도 이런 깨달음 덕분이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이런 쇼펜하우어보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던[월든(Walden)]을 쓴 미국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글을 맺는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내안에 있다. 아름다운 인생, 행복한 삶이란, 죽음 너머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것, 현재 이 순간을 아끼고 명랑하게 즐기는 것이다. 천국도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천국이 있으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곧 천국이다.
‘무소유(無所有)의 행복’을 깨달은 사람, 잔잔하고 사소한 행복속에, 하루하루의 평범한 삶에 감사를 느끼며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小確幸)을 누리는 삶이 진정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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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렬/‘뿌리와 샘’ 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