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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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너의 결혼식

2024-03-04 (월) 나혜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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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결혼식은 꿈인듯 아련하고 아름다웠다. 너의 결혼식이 있었던 프로비던스, 로드 아일랜드는 깊어져가는 동부의 멋스러운 가을에 흠뻑 취해 있었다. 178년 된 그레이스 성공회 교회에서 오후 4시에 너의 결혼식이 시작될 때 프로비던스 다운타운은 새롭게 깨어났다.

시월의 가을이 안개비를 이끌고 프로비던스 다운타운에 침입하려 했었으나 끝내 비는 내리지 않았고 같은 시각의 뉴저지는 비에 젖어 잠겼다. 뉴저지에서 하객으로 와준 친구들이 “ 프로비던스 들어오니까 오던 비가 딱 그쳤다” 고 입을 모았다.

아들이 태어난 1993년, 그 당시 뉴저지는 겨울에 눈이 왔다 하면 폭설이 내려 온 세상을 거대한 눈이불로 덮어버렸고 여름은 여름대로 혹독하게 더웠었다.
우리 가족은 에어컨이 없었던 허름한 아파트에서 여름을 나야만 했다.


나는 불볕더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두 살 딸과 갓난아이를 욕조의 찬물에 넣었다 뺐다 반복하며 더위를 식혀주었다. 하지만 빨래를 널기가 무섭게 바짝바짝 말랐을 정도의 폭염에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얼마 후에 작은 용량이지만 에어컨 한 대를 안방 창문에 달았을 때는 그야말로 온갖 시름이 물러가는 것 같았다.

한국어만 구사하던 아이가 학교에서 영어를 배워왔다. ‘엄마 잘 자!’ 하다가 ‘엄마, sweet dream’ 하고 말하기도 하고 동네 공원에 데리고 가면 사방을 뛰어다니며 ‘ I am the king of the world’ 라고 포효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던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 화상을 입는 대형사고가 있었다.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됐을 만큼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참혹한 부상이었다. 나는 평생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길렀다. 그러므로 나에게 아이는 애틋하다는 말로밖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다. 내 눈앞에서 아이가 걷고 뛰고 달릴 때는 마치 기적을 보는 것만 같아서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었으니까.

며칠 전에 아들의 생일이 지났고 며느리의 생일은 다가오고 있어 이번 주 토요일에는 아들내외를 보러 나들이를 가려고 하는데 눈치 없이 바쁘게 사는 젊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점심식사만 같이 하고 얼른 돌아올 생각이다.

다섯 시간을 달려서 겨우 두어 시간 만나고 돌아간다고 하니 아들이 하룻밤 자고 가라고 붙잡지만 나는 그냥 쿨하게 아쉬움을 남겨두고 뉴저지로 돌아오려고 한다. 비록 운전하고 오는 내내 눈물 콧물 흘리며 엉엉 울 것이 틀림없지만, 아들이 사는 보스턴에 나의 그리움을 남겨둔 채 내색하지 않는, 곧 죽어도 나는 쿨한 엄마이고 싶어서…

<나혜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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