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한 버들 한그루 서까래 촘촘한 집에 / 머리 하얀 영감 할멈 둘이 다 쓸쓸하구나 / 석자도 아니 되는 시냇가 옆길에 / 옥수수 가을바람에 칠십년이로구나” (한문 생략) - 시골집 벽에 제하다 아울러 씀 김정희 [題村舍壁(제촌사벽)
이 한시는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에서 지은 시로 추사는 초라한 집만큼 추레하게 늙은 부부를 만난다. 즐겁거나 행복해 보일 것도 없는 그들은 추사의 예상 밖으로 별탈 없이 살아간다. 먹을 것은 옥수수뿐이고 서울에 출입도 없는 무지렁이들이다.
이 노부부를 보며, 추사는 회복할 수 없는 절망의 크기만큼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커지며 자신이 유배를 온 것이 욕망과 욕심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할 즈음 어떤 욕망이나 권세도 그들을 침범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사랑을 그들에게서 발견한다. 노부부의 삶에서 화려했던 자신의 삶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행복한 삶의 지혜를 얻는다고 술회했다.
다른 시 한편, “인생의 부부란 건 천륜의 중함인데 / 늙어서 의지하니 이보다 친함 없네 / 한 번 죽음 비록 한날 죽기는 어렵지만 / 이별 뒤 홀로 남는 것 어이 견디랴.” (한문 생략) 이시는 이조판서 서대순(徐玳淳)의 시이다.
그는 부인 홍(洪)씨와 같은 해, 달, 날, 시간까지 똑같이 태어났다. 평소에 매우 금슬이 좋아서 같은 날 함께 죽자고 맹세했는데 이 시를 남긴 서대순이 먼저 죽었고 다음달에 부인도 따라서 죽었다. 병의 증세도 같았고 같은 땅에 묻혔다.
조선후기 문신 이유원(李裕元:1814~88)이 쓴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이 시를 소개하며 “명을 맡은 절대자가 그 소원을 살피고 특별히 베푼 것일까. 공과 같은 부부는 배필의 정의가 참으로 중하다 할만하다”라고 적고 있다.
나도 내 아내와 동갑으로 같은 해, 태어난 날이 같다. 내가 이 한시(漢詩) 두 편을 소개하게 된 연유는 이달 18일로 80세(배안엣나이)를 맞는 나의 할망구(望九)는 81세의 별칭으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로 아흔 살까지 살기를 바란다는 염원도 담고 있다) 아내에게 줄 선물로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문득 이 시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내의 얼굴을 화폭에 담노라니 아내와 함께 해로(偕老)한 지난 53년(연애시절까지 치면 60년)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질곡들,,,,사랑도 슬픔도 애환도 그리움도 좌절도 설움까지도 나와 함께한 아내의 얼굴은 그 오랜세월이란 반죽 속에 녹아들어 빚어낸 오래된 도자기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일 년전에 찍은 사진으로 파마가 아닌 단발 생머리가 아직도 잘 어울렸고 주름살도 적고 많이 젊어 보이기에 이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진은 그러한데 어느 날 밤, 피곤에 지친 아내의 잠든 얼굴을 유심히 보며 나는 많이 놀랐었다. 주름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울컥하고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가족을 위해 평생 일한 아내의 모습을 보며 참으로 미안한 생각뿐이었다. 덧없이 흘러간 세월, 바쁘다는 핑계로 결혼기념일도 아내의 생일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못난 남편,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몰랐던 무능한 남편을 위해 아내는 묵묵히 일만 했다. 나는 왜 바보처럼 세상을 살았는지 이제야 후회되는,,, 아내에게 속으로 용서를 빌고 있다.
결혼 전,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한 약속도 패기도 세월과 함께 이제는 사라졌다.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부탁드린다. 아내의 주름진 얼굴을 펴달라고. 오늘따라 나는 시인은 아니지만 아내를 위해 노래하지 않고는 이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아 펜을 들었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인생은 연습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내에게 무엇을 해주겠다고 약속하기에는 이젠 너무 늙어 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같은 날 함께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젠 아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임을 절감하며 아내로 맺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눈내리는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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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렬/‘뿌리와 샘’ 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