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동부지역의 케냐는 메마른 초원지역으로 비가 잘 오지 않아 늘 건조해서 물이 아주 귀하다고 한다. 그래서 케냐의 전통적으로 용맹한 부족 마사이족은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침을 뱉어 인사한단다. 침은 물이고 상대방에게 주는 ‘물의 축복’이라 는 의미란다. 앞으로 세계가 물 부족 현상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서라도 침에 담긴 깊은 뜻을 되새김질해볼 일이다. 우리 동양에서도 타면 자건(唾面自乾)이란 고사성어(古事成語)가 있다.
중국 당나라의 관리 누사덕(樓師德)은 마음이 넓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성품이 따뜻하고 너그러워 아무리 화나는 일이 생겨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동생이 높은 관직에 임용되자 따로 불렀다.
“우리 형제가 함께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 남의 시샘이 클 텐데 너는 어찌 처신할 셈이냐?” ,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화내지 않고 닦겠습니다.”
동생의 대답에 형이 나지막이 타일렀다. “내가 염려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를 것이야.”
화가 나서 침을 뱉었는데 그 자리에서 닦으면 더 크게 화를 낼 것이니, 닦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당부였다. 이 누사덕의 지혜를 오늘날 가장 완벽하게 실천했던 지도자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었다.
당시, 대국민 직접 소통에 나선 오바마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는 모욕적인 악플이 범람했다. 심지어 ‘검은 원숭이,’ ‘원숭이 우리로 돌아가라’는 흑인 비하 댓글도 많았다. 하지만 오바마는 자신을 겨냥한 저급한 비방을 여태껏 지우지 않았다고 한다. ‘사이버 침’이 SNS에서 그냥 마르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오바마의 놀라운 포용 정치가 다시 빛을 발했다. 백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숨진 흑인 목사를 비롯한 교인들 장례식에 참석해 추모사를 읽던 오바마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더니 반주도 없이 ‘놀라운 은총(Amazing Grace)’을 부르기 시작하자 영결식장을 가득 메운 6,000여 명의 참석자는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일어나 이 찬송가를 따라 불렀던 일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도중 희생자 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이 신의 은총을 받았다”고 말했고 TV로 지켜보던 국민들의 박수 소리가 아메리카 전역에 울려 퍼졌었다.
포용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고통스러운 인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내의 인(忍)은 심장(心)에 칼날(刃)이 박힌 모습을 본뜬 글자다. 칼날로 심장을 후비는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바로 인내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누구나 가슴에 칼날 몇 개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참느냐 못 참느냐, 거기서 삶이 결판난다. 누사덕과 오바마만의 문제가 아니리라. 인생사가 다 그렇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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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