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루저 도널드와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

2024-02-13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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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도널드가 다시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첫번째 이유는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2020년 대선에서 완패하고도 지금까지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못하면서 자기가 이겼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2021년 1월 6일에는 지지자들을 선동해 대선 당선자를 확정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연방 의회를 장악하게 하다 기소되자 자신이 재직 중에 한 모든 일은 면책 특권이 있기 때문에 형사 책임이 없다는 해괴한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워싱턴 DC의 연방 항소 법원은 지난 주 루저 도널드의 이런 주장을 만장일치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기각했다. 항소심 합의부는 “이 형사 재판과 관련, 전 대통령 트럼프는 다른 모든 형사 재판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시민 트럼프가 됐다”며 “그가 대통령 재직중 누렸던 행정 면책은 이번 기소에 관한한 더 이상 그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판시했다.


합의부는 이어 만약 루저 도널드의 면책 특권이 인정된다면 의회는 이를 응징하는 법을 만들 수 없고 행정부는 기소할 수 없으며 법원은 판결을 내릴 수 없어 삼권분리의 원칙은 무너진다며 “대통령은 퇴임 후 영원히 법 위에 있다는 주장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너무나 지당한 판결이다.

루저 도널드는 연방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는데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거나 기각할 수 있다. 받아들이면 또 심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본 재판은 선거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 루저 도널드가 노리는 것도 아마 이것일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 파괴범을 다시 대통령으로 뽑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그게 이유의 다는 아니다. 그가 백악관에 들어가면 국제적으로 제2차 대전 후 국지전에도 불구, 세계 질서를 유지해 온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는 끝난다고 봐도 된다.

연방 의회는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국경 밀입국자 문제 해결과 연계해야 한다는 공화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합의안을 도출했다. 이 안은 지금까지 공화당이 요구해온 것들을 거의 받아들인 초강경 국경 봉쇄안이다. 그런데도 이 안은 루저 도널드의 말 한마디로 폐기되고 말았다. 국경 문제를 올 대선 때까지 방치해 선거에 유리한 이슈로 삼겠다는 수작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로써 공화당이 진짜 원하는 것은 국경 문제 해결이 아님이 명백해졌다.

이 합의안이 폐기됨에 따라 우크라이나 추가 원조 여부는 매우 불투명해졌으며 이것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는 수개월내 맨 손으로 러시아 침략자들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푸틴은 미국이 추가 지원만 하지 않으면 평화 협상은 곧 타결될 것이라고 기고만장해 하고 있다. 푸틴의 평화 협상안은 곧 우크라이나의 굴복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루저 도널드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24시간내 끝날 것이라 말한 적이 있는데 결국 같은 이야기다. 도널드는 더 이상 무기를 주지 않을 것이고 우크라이나는 항복 이외에 길이 없을 것이다. 조국 수호 전쟁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루저 도널드는 지난 주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국방비를 제대로 내지 않는 유럽 국가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러시아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도록 “권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나라는 우방이라도 러시아의 침략을 각오해야할 것이란 얘기로 동맹국 지도자의 입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고 나와서도 안되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미국과 훨씬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유럽에 대해서도 이럴진대 아시아에 대해서야 말해 뭐하겠는가. 북한이 전면남침을 감행해도 왜 미국이 피를 흘려야 하느냐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집권 1기 때도 루저 도널드는 한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으로 방위비를 내라고 요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양식있는 보좌관들이 막았지만 2기 때는 그럴 인간이 아마도 없을 것이다.

1938년 9월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은 강력한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 지역을 히틀러에게 넘겨주면서 이로써 우리 시대의 평화를 달성했다고 외쳤지만 불과 1년 뒤 나치의 폴란드 침공으로 유럽 전역은 제2차 대전의 참화를 맞게 된다.

루저 도널드가 대통령이 돼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발트해 3국과 핀란드, 폴란드 등 동유럽 전체가 푸틴의 사정권 안에 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유럽과 대만, 한반도는 안전할 것 같은가. 루저 도널드가 다시는 권좌 근처에 가서 안 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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