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사

2024-08-20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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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만 해도 이번 대선은 역대 가장 뻔하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민주당은 바이든, 공화당은 루저 도널드가 후보가 될 것이 뻔했는데 유권자 과반수는 이들의 재대결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올 대선이야말로 근래 보기 드문 극적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첫 변수는 대선 후보 토론회였다. 1960년 케네디와 닉슨이 첫 TV 토론회를 벌인 이후 처음 1976년 포드 - 카터 토론회가 열렸고 그 후 4년마다 대선 토론은 정례화 됐다. 그러나 1960년도, 1976년도, 그 후도 토론회는 9월 이후에 열리는 것이 상례였다. 대부분 유권자들은 9월 노동절 연휴가 끝나고서야 선거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올 대선 토론회가 6월에 개최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근소한 차이로 뒤지고 있던 바이든 캠프에서 전세를 역전시킬 한 방이 필요했기 떼문이었다. 그러나 이 토론회에서 바이든은 한 방을 날리기는커녕 스스로 얻어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만약 이 토론회가 예년처럼 9월이나 10월에 열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 때는 전당대회도 끝나고 선거 캠페인도 막바지에 접어든 상태이기 때문에 후보 교체나 대안 후보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다음 변수는 도널드의 암살 미수다. 7월 13일 펜실베니아에서 총알의 방향이 1인치만 바뀌었어도 도널드는 백악관이 아니라 저 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총알은 빗나갔고 그 바람에 그는 신의 보호를 받는 사람으로 인식되는듯 보였다.

그러자 3번째 변수가 터졌다. 조 바이든의 후보직 사퇴다. 토론회 후 근소한 열세가 뚜렷한 열세로 판세가 바뀌자 그는 결국 후보직을 물러났다. 미 역사상 주요 정당 지명이 확실한 대선 후보가 이렇게 늦게 후보직에서 사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번째 변수는 카멀라 해리스의 급부상이다. 바이든 사퇴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관측통들은 전당 대회에서 후보 경선이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바이든이 해리스를 밀고 다른 주자들이 경선 대신 해리스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순식간에 단일대오가 형성됐다. 59세로 바이든보다 한 세대 가까이 젊은 흑인 여성 지도자가 대선 후보가 되면서 침체돼 있던 민주당에서는 새 바람이 불며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여러 여론 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해리스는 전국적으로 49대 45로 도널드를 리드하고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민주당원들의 태도 변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이 후보였을 때 민주당의 20%만 바이든 도널드 대결에 만족한다고 답했으나 이제는 60%가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해리스를 강력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62%로 바이든 때의 34%를 압도하고 있다.

40대 이하의 해리스 지지도 도널드보다 25% 포인트 많은데 이 또한 바이든 때 7% 포인트보다 높고 흑인의 해리스 지지는 83%로 바이든의 79%보다 높다. 해리스는 또 정신적 명석함, 신체적 건강, 정직도, 개인적 가치, 대중 이해도 등 5개 개인적 특성에서 모두 도널드에 앞서 있다.

다 이긴 줄 알고 있던 선거 여론 조사가 이렇게 나오자 도널드는 공격 포인트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다. 시카고 흑인 언론인과 인터뷰에서 그는 해리스가 최근에야 흑인이 됐으며 자신도 수년전 그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는데 장님이 아니고서야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또 바이든이 FBI를 시켜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등 최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해리스 유세에 나온 군중이 AI로 조작된 것이라는 등 바이든이 시카고 전당 대회에서 다시 후보로 나올 것이라는 등 자신이 윌리 브라운과 타고 가던 헬기가 추락해 죽을뻔 했다는 등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계속 늘어놓고 있다. 헬기 사건의 경우 브라운과 같이 흑인 정치인인 네이트 홀든이 자신이 같이 탔다고 해명하고 나왔지만 도널드는 끝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주장에 비하면 바이든 집권 이후 베이컨 값이 5배 올랐다는 그의 억지는 귀여운 편이다. 연방 노동 통계국에 따르면 2021년 1월에서 최고로 올랐던 2002년 11월 사이 베이컨 값은 30% 상승했고 그 후 하락, 이제는 11.5% 정도 비싼 상태다.

올해 일어난 정치적 이변을 살펴보면 앞으로 3개월간 어떤 돌발 사태가 일어날 지 알 수 없지만 도널드가 지금처럼 정책 대결이 아니라 식상하고 지루한 거짓말만 늘어놓는다면 승패를 결정할 유권자들은 그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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