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은 유한하다. 그 근본적 이유는 인간의 수명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은 더 하다. 권력의 유효 기간은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때까지만이다. 더 이상 권력을 차지할 수 없는 게 확실해지면 말빨이 서지 않는다.
도널드와 측근들이 집권 2기가 시작되자마자 3선 도전을 흘리고 다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현행 헌법상 불가능하다. 도널드도 이런 사실을 이해한듯 최근 3선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지만 그 이후 그의 공화당 장악력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첫번째가 연방 상원의 필리버스터 폐기 거부다. 도널드는 연방 정부 폐쇄가 사상 최장으로 길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산 승인에 60석이 필요하도록 한 필리버스터 규정을 폐기할 것을 촉구했지만 다수당인 공화당은 이를 거부했다.
내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선거구를 고쳐 의석 수를 늘리려던 그의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텍사스 선거구를 고쳐 공화당 의석 다섯석을 늘리려던 꼼수는 연방 지법이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어그러졌다.
2019년 도널드가 임명한 제프리 브라운 연방지법 판사는 텍사스의 이번 선거구가 인종을 고려해 그려졌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시했다. 텍사스 주가 항소해 연방 대법원으로 넘어갔지만 이대로 확정될 경우 이에 맞서 가주가 민주당 의석 다섯석을 늘리는 주민발의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오히려 공화당 의석수는 줄어들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캔사스, 네브라스카, 인디애나 등 공화당 주도 주의회 의원들은 선거구를 고치라는 도널드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인디애나 주 상원은 아예 29대 19로 1월 5일까지 휴회를 선언하고 집으로 가버렸다. 관계자들은 선거구 조정 표결을 해봐야 같은 표수로 부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통 MAGA 진영 내부의 반란이다. 조지아의 마조리 그린 테일러 연방 하원의원은 한 때 ‘여자 트럼프’, ‘MAGA의 엄마’로 불릴 절도로 도널드와 가까웠으며 MAGA 진영 핵심 인물의 하나다. 그런 그가 최근 누구보다 강력하게 도널드를 비판하고 나섰다. 대선 때 공약했던 미국민의 민생을 돌보지 않고 외국으로 나돌고 있으며 연말로 오바마케어 보조금 지급이 중단되면 미국인들 보험료가 대폭 오를텐데 이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격렬한 이 둘간의 충돌은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틴 파일 공개를 놓고 벌어졌다. 미국 정 관 재계의 ‘딥 스테이트’가 자신이 관련돼 있는 엡스틴 리스트를 덮기 위해 파일 공개를 저지하고 있다는 것은 MAGA 핵심 주장의 하나다. 도널드도 대선전까지 공개를 공언하다 집권 후 느닷없이 입장을 바꿨다.
그러자 그린이 이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 그린을 비롯 콜로라도의 로런 보버트와 사우스 캐롤리아나의 낸시 메이스, 켄터키의 토머스 매시 등 4명이 민주당이 발의한 공개 법안에 동조, 통과가 확실시되자 도널드는 돌연 찬성으로 선회했고 그 결과 단 한명을 제외한 만장일치로 하원은 이 안을 가결했다. 4명 중 매시를 제외한 3명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법안은 통과됐지만 도널드는 분이 풀리지 않은듯 한때 자신의 정치적 절친이었던 그린을 “반역자”라고 부르고 내년 하원 선거에 그녀의 경쟁자가 공화당 경선에 출마한다면 그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그린은 지지 않고 “누가 반역자인지 말해주겠다. 반역자는 외국과 자신을 섬기는 미국인이다. 애국자는 미국을 섬기고 나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이라고 맞받아쳤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용기있는 발언이다.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것은 그린이 MAGA 진영내 독자적인 지지 세력이 있기 때문이지만 이는 벌써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향한 각축전의 시작일 수 있다. 그린은 공화당 내분을 피하기 위해 내년 초 의원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혀지만 관계자들은 그녀를 2028년 유력한 대선 주자의 한명으로 보고 있다.
여기다 “히틀러는 멋진 인간”이라는 닉 푸엔테스를 MAGA 진영의 일부로 인정할 것이냐 마느냐를 놓고도 내분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감싸자니 지난 대선 때 공화당에 표를 준 소수계와 이민자가 떨어져 나갈 것 같고 내치자니 미국을 백인들의 나라로 만들고 싶어하는 MAGA 핵심 세력의 반발이 두렵다.
지난 주 도널드가 엡스틴 파일에 관해 질문을 던진 블룸버그 여기자에게 “조용히 해 돼지야”라고 외친 것은 이런 일들이 겹친데 대한 초조함과 좌절감의 산물로 봐야 한다. 자신감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런 비천한 용어는 쓰지 않는다. 그나저나 시간은 가고 그와 함께 도널드의 권력도 가속적으로 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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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