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통령이라는 자리의 득과 실

2024-08-27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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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헌법에 명시된 직책 중 평상시 가장 별 볼 일 없는 것이 부통령직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 유고시 그 자리를 승계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옛날 왕정 때 왕실의 최고 관심사가 ‘후계자와 예비 후계자’(Heir and Spare)를 생산하는 것이었던 것과 같은 원리이다. 스페어 타이어와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별 관심도 없지만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중차대한 임무를 맞게 된다.

부통령의 역할에 크게 실망한 사람은 첫번째 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였다. 오죽하면 그 자리를 “인간이 만들었거나 상상해낸 가장 하찮은 직책”이라고 불렀겠는가. 세월이 지나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1933년부터 1941년까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부통령을 지낸 존 가너는 이를 “따뜻한 오줌 한 통 가치도 없다”고 깎아내렸다.

이렇기 때문에 명색은 행정부 제2인자 자리지만 여기서 바로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1789년 첫 부통령이 탄생한 이후 2021년 마지막 부통령이 취임했을 때까지 49명의 부통령이 있었지만 이 중 대통령이 된 사람은 15명뿐이며 그나마 8명은 재임 중 대통령이 죽어 자동으로 그 자리를 승계했다. 제럴드 포드는 유일하게 대통령이 사임해 그 직을 물려받았고 자력으로 출마해 선거에서 당선된 부통령은 겨우 6명이다.


이중에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고 바로 부통령이 뒤를 이은 경우는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마틴 밴 뷰렌, 조지 부시 4명 밖에 없고 리처드 닉슨과 조 바이든은 한 번 떨어졌거나 선거를 건너뛴 후 당선됐다. 제퍼슨의 경우는 애덤스와 당이 달랐기 때문에 부통령이 승계했다기보다 정권이 교체됐다고 보는 것이 맞다.

1988년 부시가 승리했을 때 언론에서는 1836년 마틴 밴 뷰렌이 부통령에서 바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 152년만에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대서특필했었다. 앤드루 잭슨 때 부통령이었던 밴 뷰렌은 이 일 말고는 역사책에 거의 거론되지 않는 인물이다. 부시도 밴 뷰렌도 한 번밖에는 하지 못했다.

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왜 이다지도 힘든 것일까. 보통은 대통령이 두 번 하고 물러나기 때문에 3번까지 같은 당에서 집권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기 마련이다. 3번 연속 집권하려면 국민들이 집권당에 매우 만족한 상태라야 한다. 조지 워싱턴과 앤드루 잭슨, 로널드 레이건 때가 그랬고 그들 밑에서 부통령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당선에 성공했다.

올 해 선거에도 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왔다. 전례를 보면 당선 가능성은 크다고 볼 수 없다. 역사적으로 그런 예가 드물 뿐더러 바이든 4년 치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별로 좋지 않다.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한 때 9%가 넘는 인플레가 발생하는 바람에 서민들의 실질 임금은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바이든으로서는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돈을 풀었기 때문인데 당시 위급한 상황에서 정부 지출을 늘리지 않았더라면 어떤 불황이 올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에 대한 책임을 묻자면 루저 도널드도 피해 갈 수 없다. 돈을 풀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이기 때문이다. 통화량 증가의 효과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는 떠나고 바이든이 옴팡 뒤집어 썼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카멀라 해리스에게 힘든 싸움인 것은 분명하지만 유리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이 한 번만 하고 물러났기 때문에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이 덜하다. 그리고 부통령 자리가 워낙 실권이 없기 때문에 바이든의 실정 책임을 해리스에게 묻기 어렵고 사람들은 해리스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적으로 잘 모른다. 흑인과 인도계의 후손임을 내세워 바이든에서 떠난 소수계 표심을 얻고 중산층 지원안으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처음 나온 페어레이 디킨슨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해리스가 도널드를 50대 43으로 7% 포인트 리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전당대회의 축제 분위기가 반영된 일시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독특한 선거 제도 때문에 전국적으로는 7%가 아니라 10%를 이겨도 아무 소용이 없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은 전국적으로 5% 포인트 가까이 이기고 총 유효표도 700만표나 많았지만 이는 승부에 상관이 없었고 애리조나와 조지아, 위스콘신의 4만표가 승패를 갈랐다. 올해도 별로 다르지 않다. 앞으로 남은 두 달간 두 후보의 행보가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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