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겨울 산행

2024-02-01 (목) 윤관호/국제펜한국본부미동부지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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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겨울이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산에 간다. 동료들과 함께 간다. 지난 12월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산행을 했고 이번은 새해 들어 첫 산행이다.
뉴욕시에 있는 집을 떠난지 1시간30분후 잭키 존스(Jackie Jones) 산 입구에 도착했다. 이 산은 뉴욕주 락크랜드 카운티 하버스트로(Harverstraw, Rockland County)에 있다.

엊그제 눈이 왔는데 어제 폭우가 쏟아졌기에 계곡 개천의 물 흘러내리는 소리가 웅장한 교향악으로 들린다. 바람이 심한 날씨임에도 산에 오니 바람이 없다.

산 속으로 올라가니 영상의 온도로 산길에도 물이 흐른다. 엊그제 내린 눈이 군데 군데 쌓여 있다가 녹아내리고, 어제 내린 비로 낙엽더미에 고인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리라. 벌거벗은 나무들이 내면의 성숙을 위해 삶을 뒤돌아보고 미래를 꿈꾸고 있다. 눈보라 강추위가 몰려와도 봄을 기다리며 고난을 참고 견디며 살아간다.


발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물이 많지 않은 지점으로 조심하며 발을 옮겨 걷는다. 오르막 길을 걷다가 내리막 길을 걷다가 다시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걸음을 옮긴다.
산길은 대부분 직선보다는 곡선이 많다. 사람도 순탄한 삶 만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련에 주저앉지 않고 꿈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면 어려움도 극복해 내리라.

겨울에 산에 가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추위에 겁을 내고 위험할까 두려워한다. 산에 들어가니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산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 곰은 땅 속 어디서 겨울 잠을 자고 있는지 궁금하다. 산 속 길을 계속하여 걷고 또 걷는다. 수령이 오래 되어 쓰러진 나무들도 보인다.

이전 폭풍으로 쓰러진 나무들도 보인다. 벼락 맞아 일부분만 남은 나무는 괴상한 몰골을 하고 있다. 쓰러진 지 수십년이 된 나무들은 점차 흙으로 변해간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무에 달린 노란 표식을 보며 산 길을 간다. 갈림길에서도 노랑 표식을 찾아 길을 가야지 잘못 가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산속에서 길을 잘못 가면 고생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여러 해 전에 내가 친구와 함께 다이어몬드 산 블랙 코스로 산행을 할 때 맞은편에서 오던 서양 여인 두 명을 만났는데 길을 잃고 3시간 반이나 헤매고 있다고 했다. 휴대전화로 구조요청을 하니 산정호수 입구로 오라고 했다며 길을 물어 우리가 함께 안내해 간 적이 있다.

산속 큰 개천을 지나 가파른 경사를 오르니 거대한 바위 위에 셀터(Shelter)가 보인다. 해리만 큰 언덕 대피소이다. 우리 일행은 주위에서 주워 온 죽은 나무가지들을 아궁이에 넣고 불을 피운다. 은박지에 싼 고구마를 불 위에 얹는다. 산행을 할 때 반드시 정상까지 오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일행이 미리 정한 곳까지 가면 된다.

앨버트 머메리는 “문제는 고도가 아니라 태도다. 산행의 본질은 정상을 오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 있다.” 라고 했다. 곤로에 냄비를 얹고 끓인 떡국이 별미이다. 군고구마를 먹으니 어릴 적 고향생각이 난다.

일행의 요청으로 나의 부족한 시를 암송한다. ‘새해 떠오르는 태양을 기쁨으로 맞이하리/안일과 나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마음으로 젊은 꿈을 지니고 하루 하루 감사하며 용기와 도전정신으로 나아가리/원칙을 지키되 유연함을 잃지 않고 언덕을 만나도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오르고 오르면 산을 넘으리/비 오는 날에도 구름을 넘어 햇빛 가득한 하늘을 나는 나 자신을 보리라/세월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청춘의 활력으로 무지개를 만드는 나 자신을 보리라’

새해 겨울 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 간다.

<윤관호/국제펜한국본부미동부지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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