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은 지금⋯] 역사속 민주주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2023-12-05 (화)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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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샌토스 연방하원의원이 미국역사상 6번째로 그것도 유죄판결을 받기 전에 의회에서 제명되었다. 샌토스는 하는 말마다 거짓말을 했고, 심지어 자신의 선거 모금액으로 화려한 여행과 선거이외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조지 샌토스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맹점을 가장 잘 활용하여 시민들의 지지표를 받아 합법적으로 의회에 입성을 하였다. 정쟁에 눈이 멀면 보다 나은 정치인이 아닌 사기꾼을 선출하게 되는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기원은 기원전 507년, 아테네의 지도자 클레이스테네스가 데모크라티아(Demokratia) 즉‘민중에 의한 통치’라고 부르는 정치개혁 시스템을 도입하면서였다. 물론 그리스가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기 때문에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여기고 있지만, 기록되지 않은 민주주의 역사는 여러 곳에 있었을 것이다.


무리를 구성하고 운영하는데서 모두가 합의하고 모두가 움직이는 가장 좋은 방식이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부족 단위의 사냥과 채집 집단과 같은 소규모 무리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가장 잘 일어날 수 있는 집단 운영방식이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사냥과 채집 중심의 부족시대가 지나고, 농업과 무역을 중심으로 보다 큰 국가 형태의 집단이 발생하면서 집단간 부와 군사력의 차이가 발생했다. 또 같은 집단 안에서 부와 무력을 가진 세력들이 생겨나고, 권위적인 형태의 사회조직이 확산이 되면서 왕정과 귀족제 또는 몇몇의 권력자들이 합의하여 다스리는 과두제 기반의 정부가 나타나게 되면서 원시 민주주의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507년경 그리스에서 도시국가들이 발달을 하면서,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발생을 하고 250여년 동안 민주주의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외교와 법을 만드는 기구, 각 부족의 대표자 협의회, 무작위 복권 추첨으로 구성되는 배심원 조직으로 정부를 구성하여 운영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460년 경, 페리클레스 장군이 스스로 “최고의 한 사람” 이라고 부르면서 민주주의는 막을 내렸다.

아테네 민주주의 시작은 다수의 시민들을 노예처럼 다루는 소수의 부자 귀족들의 횡포로 농노와 시민들의 반란의 조짐이 보이자 채무 노예 방지와 해방, 그리고 토지개혁으로 반란을 잠재우려 개혁이 시작되었고 클레이스테네스가 마침내 정치적인 개혁을 주도하여 민주주의가 시작 되었다.

그러나 아테네의 힘이 날로 성장하면서 주위 도시국가들에 대한 제국주의 정책으로 스파르타라는 강력한 적을 마주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많은 물자를 제공한 귀족세력의 급격한 성장은 민중파와 끊임없는 대립으로 이어졌고, 모든 국가정책이 귀족파와 민중파의 정치적인 힘의 대결에 의하여 진행이 되었다.

이에 더해 사법부가 정치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정쟁에 흔들리던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정쟁에서 패배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수천 년동안 무력을 가진 권력지향적 세력들에 의해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나 내전을 통해서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는 전제군주제 시대를 살아야 했다.

그리고 지금 인류는 시민의 지지표를 받아서 권력을 쟁취하는 평화적 권력교체를 하는 현대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이 심사숙고 하지않고 극단적 이념에 빠져 선거를 정쟁의 도구로 여기고 능력있는 지도자를 선출하지 못할 경우 하루 아침에 민주주의를 잃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아테네 민주주의 역사에서 그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면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하고, 언론을 비롯한 여론 지도층은 건전한 여론을 만들어 극단주의자들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샌토스 같은 사기꾼을 뽑았지만 정쟁에 눈이 멀어 선거를 하면 히틀러 같은 인물을 뽑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미국이라도 아테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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