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만남’

2023-11-27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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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은 이새의 아들 중 하나를 택해 왕으로 세우기 위해 베들레헴을 은밀히 방문했다. 사무엘 앞에 제일 먼저 선 아들은 엘리압이다. 엘리압은 사울처럼 잘 생겼고 키도 컸다. 이새도 장남인 엘리압을 가장 적합한 후보로 생각하고 사무엘 앞에 세웠을 것이다. 사울의 실패를 경험한 사무엘이지만 이번에도 사울과 같은 인물에 마음이 끌렸다. 그라나 사무엘은 오판했음이 틀림없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시 하신 말씀은 인류 역사에서 두고두고 인용되는 명언이 되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 후 사무엘은 일곱 명의 아들을 모두 검토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택하지 않았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다른 아들은 없는지 묻는다. 이새는 대답한다. ‘막대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사람은 양을 성실하게 돌보는 목자가 되어야 함을 알아챈다. 사무엘과 다윗은 이렇게 운명적으로 만났다.“
(김구원의 ‘사무엘상 주석’ 중에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권이 주어졌을 때 그는 나이어린 목동이었다. 지도자의 자격을 고찰할 때 목자라는 은유는 중요하다. 목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린다. 목자는 권위를 가지고 군림하지 않는다.

목자는 양들을 보호하고 먹이고 양육하고 치유하는 일에 전념한다. 문자 그대로 목양일념(牧羊一念)이다. 이런 목자형 리더가 있는 곳에 의미 있는 만남이 이루어진다. 사무엘과 다윗의 만남이 그 대표적인 예다.


죄악의 징벌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유배되자 당장 민족의 생존이 문제가 되었다. 언제 신앙과 정체성이 소멸해 버릴지 모르는 위기감으로 유다 민족은 흔들렸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선한 목자를 만나기 위해 기도하고 사모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시편 23편은 이 간절한 소망의 서사시이다.

안개꽃은 석죽과의 내한성 한해살이 작은 풀이다. 백설(白雪)처럼 하얀 흰 꽃이 군락을 이루며 양지바른 마당에 줄지어 핀다. 꽃봉오리가 너무 작고 외모가 단출해서 무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

사람들은 그냥 안개꽃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작고 하찮은 안개꽃이 장미나 카네이숀을 만나면 사뭇 얘기가 달라진다. 조용히 밤을 밝히는 가로등처럼 자신보다 남을 빛나게 해 주는 귀한 존재가 된다. 자기 자신은 영광을 얻지 못했을 지라도 실제적인 일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 안개꽃이다. 안개꽃은 말하자면 탁월한 목자인 셈이다.

의미 있는 만남은 이질적 타자의 관계를 부수고 새로운 길을 연다. 어떤 장소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뀌고 삶은 도약한다. ‘상처받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라는 책으로 유명한 헨리 나우엔은 ’희망의 공동체‘의 창립자 장 바니에를 만남으로 하버드 대학 교수에서 장애인 사역자로 변화했다.

유대주의 열성주의자였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인류 역사를 바꾼 이방인 선교사가 되었다. 일생에 한 번은 위대한 목자이신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라.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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