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생각] 해마다 11월이 오면

2023-11-24 (금) 김영란 탈북 선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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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1월이 찾아오면 나는 지난날 아름답던 내 유년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세상이 험악해지고 인심이 살벌해질수록 그 옛날 6.25 피난시절 충청남도 공주에서 지냈던 푸근한 인정과 인심 그 마음씀씀이들이 밤하늘의 별빛이 하나, 둘 떠오르듯이 내마음 속에 영롱한 아름다움으로 떠오른다.

이북에서 걸어내려와 공주 읍내로 발을 들여놓은 피난민 대열들은 그곳 양반들의 느릿한 말씨 “고향을 떠나오느라 월매나 애썼시유, 예부터 낯선 타향살이는 서럽다 하든디 이곳 인심은 다른디보담 덜 할거여유 며칠 푹 쉬면서 생각해봐유, 어딜 가나 자기 고향 아니면 다 낯설고 물설지유, 전장이 끝나서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 짐 풀고 그냥저냥 같이 살아봐유” 하는 꾸밈없는 구수한 말씨와 정이 듬뿍 담긴 위로의 말을 들었다. 어머니와 일행들은 그대로 그곳에 피난짐을 풀어놓았다.

그때 어머니 치맛자락을 꼭 잡고 졸졸 따라다니던 다섯 살도 되지 않은 나의 어린 가슴에도 충청도 어른들의 따스한 인정이, 마치 맑고 깨끗한 5월의 하얀 아카시아 꽃향기같은 것이 하나 가득 넘쳐남을 느꼈다. 단번에 공주 봉황동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것처럼 금세 정이 들었다.


그 이웃들 중에서 가장 연세가 많던 칠성이 아저씨는 변변치않은 연장을 가지고도 피난 나온 이웃집들의 단칸방이 비좁을 거라며 다 낡은 나무조각들을 주워다가 선반을 달아매어 주었다. 또 한겨울에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청솔가지와 갈쿠리로 긁어모은 가랑잎들을 조금씩 묶어서 데리고 간 피난민 어린아이들의 등에 짊어주고 당신은 큰 지게에 힘겹게 하나 가득 짊어지고 내려오곤 했다. 어둑어둑한 추운 겨울밤에도 집집마다 골고루 나눠주던 그분의 인정스러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 그때 그분이 준 청솔가지로 불을 지필 때마다 연기로 인하여 눈물을 많이 흘렸던 것처럼 지금도 그분을 생각하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또 희복이할머니는 생활이 어려웠지만 늘 당신네 생활 걱정보다 고향을 떠나 외롭게 사는 피난민이웃들을 더 딱하게 생각하며 작은 농사 중에서도 고구마, 감자 그 외에 곡식들을 조금씩이나마나누어 먹는 기쁨을 함께했던 분이었다.

그 몇 년의 피난생활 후 우리가 서울로 떠나기 바로 전에 칠성이아저씨와 희복이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분들의 마음만큼이나 깨끗하고 하얀 종이꽃들을 교회언니들과 밤이 새도록 만들어서 상여에 달아드리고 교우들과 함께 찬송가 545장 “하늘가는 밝은길이 내앞에 있으니 슬픈 일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를 부르면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지금은 친정어머니도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그때 공주에서 7년쯤 살다 서울로 환도할 때까지 참많은 이웃들을 전도하여 아름다운 교회도 하나 세워 건축하였다. 나는 그때 따스했던 겨울을 생각해본다. 지금 내나이가 그분들 나이만큼 됐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내마음 속에서는 값진 보석처럼 반짝이며 감동으로 차고넘침을 주님께 무한히 감사드린다.

<김영란 탈북 선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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