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 위증(僞證), 그 오래된 어둠의 쓴 뿌리

2023-03-31 (금) 신응남/변호사·서울대 미주동창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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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공판 중 법정 진술하기 전에 증인은 필히 선서를 하도록 되어있다. “당신은 오늘 법정에서의 진술이 모두 사실이며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까?” 정의로운 결과를 얻기 위해 증인의 사실에 입각한 진술이 필요한 것이다.

법원 및 관공서는 공증된 서류를 제출토록 규정하고 있다. 공증을 요구하는 서류의 사인 부분에는, “서류에 기재된 내용이 모두 사실이며 허위 사실이 밝혀질 경우, 위증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것을 서약한다”는 문구가 들어간다. 그러면 이런 엄숙한 선서와 공증제도는 과연 언제부터 유래된 것일까? 그 법과 제도의 기원인 ‘ 함무라비 법전’을 통하여 찾아보고자 한다.

“정의를 이 땅에 세워 악한 자들을 없애고, 약한 자들이 강한 자들에게서 상해를 입지 않도록, 태양신과 같이 사람들 위에 올라, 국가를 밝히도록 ‘아누와 엘릴’은 사람들이 잘 살도록 나의 이름을 불렀다” 라고 함무라비는 그의 법전서문에 법 제정의 목적을 적었다.


BC18세기 고대 바빌론왕국의 6대 왕 함무라비는 그 이전부터 내려오던 법을 집대성한 282조항의 ‘함무라비 법전 (BC 1754)’을 제정 공표하며, 후대에 즉위할 왕들에게 이 법을 바꾸거나 폐기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동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의 원칙을 기초로 한, 도시국가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전 분야 즉 형법, 민법, 상법, 가정법을 총망라하였다. 잠시, 법전의 몇몇 특이한 조항들을 살펴보려한다.

제1조:타인에게 죄를 돌려 살인죄로 그를 고발하고, 확증하지 못하면 고발자를 사형에 처한다. 제3조:소송사건에서 불리한 증언을 하려고 재판정에 출두해 그가 한 말을 확증하지 못하면, 그것이 생명에 관한 소송일 경우에 그를 사형에 처한다.

제6조:신전이나 왕궁에 속한 재산을 훔친자, 훔친 물건을 넘겨받은 자 사형에 처한다. 제108조:술집 여주인이 술값으로... 지나칠 정도로 은을 요구하거나, 술의 되를 작게 하였으면, 그녀를 물속에 던진다. 제122조:타인에게 금은이나 물건을 맡기고자 하면 증인에게 보이고 계약서 작성 후 맡겨야 한다.

제129조: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누워있다가 붙잡히면, 묶어서 물속에 던져버린다. 제134조:남편이 포로가 되었고, 집에 먹을 것이 없으면, 다른 남자의 집에 들어가도 죄가 없다. 제195조:아들이 자기 부친을 때렸으면 그의 손을 자른다.

제196조: 평민이 귀족의 눈을 쳐서 빠지게 하였으면, 그의 눈을 뺀다. 제201조: 귀족이 평민의 이를 빠뜨렸으면, 은 1/3 미나를 물어야 한다.
함무라비 법전은 시작부터, 법정에서 ‘위증’을 엄하게 다스렸다. 위증을 사회 전체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중대한 범죄로 간주하고 사형으로 다스렸으며, 사유재산의 보호와 무역이 발달했던 당시의 분쟁 해결 위한 기록 유지 및 증인의 진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바벨로니아 제국이 형성되며 이웃나라의 침략전쟁이 빈번하던 역사적 상황이라 남자들의 전쟁 참여로 발생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존속상해에 대한 패륜적 행위도 엄벌로 다스렸다.


동 법전이 공표된 지 4,000여년이 지난 21세기에 와서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 정의를 해치는 사건들의 주요 원인은 ‘거짓된 증언’에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함무라비의 메소포타미아 제국에서, 그리스,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서구문명은 중요한 사건에 대한 증언은 늘 선서를 요구해왔다.

얼마나 많은 공직 후보자가 거짓증언으로 낙마를 했고, 얼마나 많은 고위 공무원들이 뇌물죄로 거짓증언을 하다가 처벌을 받았는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난무하는 SNS 유튜브어들이 가짜뉴스로 얼마나 큰 사회적 불신과 증오를 부추키며 국력을 소멸시키고 있는가? 그로인한 적폐가 방관하기엔 도를 넘고 있다. 다소 가혹하기는 하나, 위증에 대한 함무라비 법을 소환하여 중벌로 다스린다면 사회는 다시 신뢰 질서를 회복하고 국력소모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은 정의의 강력한 상징이 될 수도 있지만 법 자체만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 통치자는 모든 법의 권위를 존중하며,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함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4,000년전 함무라비는 후세들이 그가 공표한 법을 읽고 사회정의를 구현하기를 바랬다.

칸트는 “하늘에는 찬란한 별,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빛나는 거룩한 도덕률”이라고 했으며, 니체는 완벽한 인간인, 초인(Ubermensh)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이성(理性)을 매번 소환하여 법정에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한 인간존재의 위대함이란, 우리의 행동을 옳은 길로 안내하는 이성을 잘 관리하여, 빛나는 양심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지 않을까!

<신응남/변호사·서울대 미주동창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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