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 ‘기다림의 미학’

2023-02-27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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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압도하는 연기로 오스카상을 받은 최초의 이탈리아 영화배우 안나 마냐니(Anna Magnani)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사진을 찍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사진을 찍기 전 다소 긴장한 얼굴로 사진사에게 조용히 부탁했다.

”사진사 양반, 절대 내 주름살을 수정하지 마세요.“ 사진사가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그걸 얻는 데 평생이 걸렸거든요.“ 성장의 격차는 목적지까지 가기위한 과정의 깊이가 결정한다.

열망하는 자는 기다리며 모색한다. 더 나은 날을 위해.”(김종원의 ‘인문학 수업’ 중에서) 우리는 왜 기다려야 하는가. 기다림의 의미와 효과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다림은 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들어가기 위한 검증이다.


홍해에서 가나안 땅 까지는 통상 11일이면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시대광야에 머무르게 하셨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검증하신 것이다.

검증은 무엇인가. 진짜와 가짜,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순화와 성화의 과정이다. 주인의식이 결여된 노예 백성이 창의적인 하나님 선민으로 변화되는 과정이다. 정체성의 위기를 벗어나 목표의식이 분명한 지도자가 되는 과정이다.

애굽의 노예 시절, 하나님의 검증을 받기 전, 이스라엘 백성은 목표의식이 희박하여 무의미, 무기력한 삶을 살았다. 광야 검증의 단계를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정복할 꿈과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 광야 40년의 기다림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목표 지향적 백성으로 도약했고, 꿈꾸던 새로운 땅으로 진입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다. 가난한 시골뜨기 소년이 대통령이 되기까진 쉽지 않았다. 17번 연속으로 실패한 후에야 비로소 대통령의 자리에 도달했다. 기다린 햇수만 28년이었다. 링컨은 청년 이후 고질적 우울증을 앓았다. 링컨은 좌절하지 않았다. 링컨은 목표를 향하여 차근차근 전진했다. 기다림과 인내는 링컨의 위대한 인품이며 매력이다.

같은 진흙으로 빚은 그릇이라도 거치는 과정에 따라 그릇에 붙이는 이름과 운명이 바뀐다. 도요에서 사기그릇을 만드는 과정은 5단계면 끝난다. 하지만 청자나 백자를 구워내려면 12단계 이상을 거쳐야 한다. 가마의 온도를 섭씨 1,350까지 올릴 수 있어야 우과청천(雨過晴天)의 비색을 품어내는 청자, 백자를 품에 안을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담과 하와, 아브라함의 조카 롯, 사울과 가룟 유다가 재능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다. 인생을 쉽게, 속성으로 살아보려고 잔머리를 쓰다가 망했다. 진실한 사람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산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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