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 정의롭고 소신있는 판결을 대하며

2023-02-17 (금) 임일청/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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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68 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에게 배상금 3,0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응우옌씨는 월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베트남 중부 꽝남성 퐁니, 퐁넛마을에 한국군 해병대 제2여단 (청룡부대)에 의해 비무장 민간인 74명이 학살당했으며 당시 여덟 살이었던 응우옌씨는 이 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자신도 복부에 총격을 입었다며 2020년 4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금 3,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었다.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베트남군이 한국군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고, 게릴라전의 특성상 민간인 피해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참전군인들과 목격자들은 법정에서 일관되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증언했다. 특히 당시 청룡부대 소속으로 참전했던 류진성씨는 다른 소대원들이 중대장에게 민간인들을 어떻게 할지 물어봤더니 중대장이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고 2021년 11월에 증언한 바 있다.

박 부장판사는 각종 증거와 증언 등에 따르면 한국군이 마을 주민들을 한곳에 모이게 한 뒤 총으로 사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결론짓고 해병대원들이 작전 중 총으로 위협하며 원고 가족들을 나오게 한 뒤 현장에서 총격을 가했고 원고의 이모와 남동생, 언니 등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원고와 오빠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한, 박 부장판사는 인권침해의 불법성, 피해 내용과 정도, 50년 이상 배상이 지연된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4000만 원으로 책정했으며 응우옌씨가 3,000만원의 배상금을 청구한 점을 감안하여 이에 상응하는 액수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날의 판결에 대해 대한민국 국방부는 관련기관 협의를 통해 후속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한국정부가 인정하지만 않았을 뿐 월남참전 장병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며 나 또한 지인들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전쟁의 참상에 대해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래도 정의롭고 양심있는 박진수 판사와 응우옌씨의 변호사, 그리고 류진성씨와 같은 용기있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어둠의 그림자로 주름지고 일그러져 있던 한 인간의 삶이 작게나마 회복된 모습을 대하게 되니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든다.

이 판결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배상은커녕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시인도, 사과도 하지 않고 있는 일본제국과는 확연히 다른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판결을 이끌어 낸 재판부에 다시 한번 깊은 경의와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의롭고 양심적인 판결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임일청/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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