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론 - 계묘년(癸卯年) 새해를 맞이하여

2023-01-03 (화) 노재화/전 성결대 학장·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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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든 사회이든 해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쯤에는 지난 1년 동안의 결실을 마무리하게 된다. 2022년 말에도 각종 매체들이 한 해에 일어났던 사회의 추세들과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각종 데이터들을 발표하는데 매우 흥미롭다.

국내외 이슈가 된 단어들이나 사자성어를 보면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사는 이 땅을 포함하여 공통적인 시대상이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리암 웹스터 사전은 1938년 영국에서 상영된 연극 ’가스등 Gaslight)에서 유래했다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선정했다.

이 의미는 ‘상황을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어 판단력을 잃게 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지칭하며, 우리말로 ‘심리지배’라 부른다.


또한 영국의 콜린스 사전은 ‘퍼머크라이시스(Permanent+crisis, 영구적 위기)를 뽑았고, 옥스퍼드 사전(OED)은 190억의 영어 단어를 인용한 분석을 통하여 올해의 단어로 ‘고블린 모드(Goblin Mode; 도깨비 모드)’로 선정하였다.

‘고블린(덩치가 작고 사악한 도깨비) 모드’란 ‘사회규범을 따르지 않고 고의로 나태하거나 뻔뻔스럽고 탐욕스럽기까지 한 행동 양식‘이라는 의미라며 적당한 한국어로는 ‘베짱이 모드’라고나 할까. 더 타임스는 ‘너무 많은 사람이 어려운 한 해 속에 ’고블린 모드‘로 들어 섰다’고까지 주장했다.

미국의 언어학자 벤 짐머는 ‘고블린 모드는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확실한 2022년식 표현’이라고 했다. 이 단어의 의미가 한국 젊은이들이 처해있는 7포세대와 덕후(Nerd, 일본어 오다꾸의 비슷한 한국식 발음)족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특히 2022년12월, 대한민국의 교수신문에 따르면 집단지성인 대학교수 9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가 1위를 차지했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서 ‘잘 못하고도 고치지 않음이 바로 잘 못’이라는 것이다.

이어 2위는 욕개미창(慾蓋彌彰,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들어남), 3위 누란지위(累卵之危, 여러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 4위 문과수비(文過遂非, 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 못 된 행위에 순응함), 5위 군맹무상(群盲撫象,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사물을 그릇되게 판단함)으로 나타났다.

2021년에도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 패가 됨)로 고양이가 쥐를 잡아야 하는데 한패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자성어를 보면 최근 한국이 처해있는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서 매우 씁쓸하다.

앞서 언급한 올해 선정된 ‘고블린 모드’나 ‘가스라이팅’과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 과이불개와 같은 사회현상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새 사회로 나가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다.


다사다난 했던 2022년은 이제 지났고, 대망의 2023년 새해를 맞이하였다.
우선 ‘가스라이팅’같은 심리지배로 타인을 적대시하지 말고 신뢰받는 개인이나 사회 지도층이 되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법과 제도가 움직이는 시스템하에서 내로남불을 버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지위에 따른 도덕적 의무)정신을 지향하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마음을 비우고 성찰하면서 솔선수범하는 정직한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로 젊은이들은 ‘고블린 모드’와 달리 7포와 덕후에서 벗어나 새 희망을 가지고 새 역사 창조에 주역이 되자. 어느 시대이든 누구든지 어려움과 긴 터널은 있기 마련이지만 인내와 노력을 하면 어려움도 극복하고 터널의 끝도 보이지 않겠는가.

셋째로 영국의 역사가 E.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며 미래 발전을 위하여 성찰이 필요하다. 과이불개와 달리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 과거의 분명한 잘 못은 그대로 인정하고 반성하며 좋은 것은 보존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온고지신(溫古知新)정신을 지향하자.

인간에게 인격 인품이 있듯이 국가에는 국격이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경제선진국으로서 2023년은 정치적, 사회적, 정신 문화적 선진국으로 도약할 국격을 갖추는 원년으로 삼아 보자.

<노재화/전 성결대 학장·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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