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 이태원 핼로윈 참사

2022-11-04 (금) 조성내/시인·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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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저녁 재미있게 놀기 위해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여럿이서
이태원 핼로윈에 모였는데
재미가 왜 재미로
끝나지 않았을까
기쁨이 왜 기쁨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걸어가기에는 좁은 비탈길
이태원 해밀턴호텔 뒤편
음식거리로 올라가는 사람들
내려가는 사람들
뒤섞이면서
이쪽에서 밀고오고
저쪽에서 밀고오고
사람이 죽어간다고
고성과 비명으로
밀지 말라고 소리쳐도
흥분돼 있는 사람들
남들의 죽음을 듣지 못한다
군중에 도취해서 앞으로 민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해도
하늘이여, 하늘은 너무 한다
가운데 사람들은 압사한다
죽으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닌데
즐기려고 여기 온 것인데
하늘은 너무 했다
하늘은 너무 했다
이런 참사를 보고도
하늘은 눈물 한 방울도
흘러주지 않았다

<조성내/시인·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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