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생각 - 영화 ‘수리남’ 전화로 결혼하자고 한 게 멋있다

2022-10-26 (수)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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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고 해서 보았는데 ‘수리남’은 좋은 영화였다. 부모는 일찍 돌아가셨다. 두 동생은 어려서 집안청소도 할 줄도 모른다. 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 빨리 구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강인구는 여러 명의 여자에게 전화한다.

“나 인구인데, 진짜로 고민 많이 하고서 너한테 얘기한다. 나랑 결혼해줄래.” 하고 말을 꺼낸다. 전화로 갑작스럽게 결혼하자고 청혼해오면, 어느 여자가 오케이 하고 허락해주겠는가. 아니 해준다. 여자들은 우선 ‘돈이 있느냐’부터 따진다. ‘살 집’도 생각한다.

“돈이야 모으면 되는 거 아냐. 어른들이 그러잖아, 결혼하면 돈이 모인다고.”라고 인구는 대답해준다. 퇴자 맞는다. “집?, 이 사람아, 돈을 모아서 목돈을 마련한 다음에 집을 사면되는 거 아냐. 뭐가 그렇게 궁금해” 또 퇴자 맞는다. 많은 여자들로부터 거절당한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한 여자가 “그러자”며 짐을 싸 들고 들어온다. 이제는 강인구가 깜짝 놀란다. 그녀의 이름은 혜진이다. 결혼한다.


인구가 전화 걸어 결혼하자고 청혼하는 것을 보고서, 나는 놀란다. 나는 부끄럼을 탄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전화 걸어 만나자는 말도 못한다. 그런데 전화 걸어 결혼하자고 청혼하는 인구의 뱃장을 보고서 놀라웠고 그리고 부러웠다. 궁합도 보지 않고, 중매도 없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를 미리 알아보지도 않고, 전화 걸어 만나고 보니, 이처럼 성실한 남편에 착실한 아내가 만난다는 것, 이것은 분명 천생연분의 결혼인 것이다.

혜진이는 또한 착실한 기독교신자이다. 홍어 사업을 하러 수리남으로 가려고 할 때, 혜진이는 반대한다. 가지 못하게 한다. 인구가 꼭 가겠다고 하니까, “교회에 가야한다”는 조건으로 허락해준다.

교회에 간다는 조건! 이게 인구가 겪어야 할 무서운 시련(試鍊)의 시작이다. 수리남에서 홍어사업을 시작한다. 군인들이 와서 자기 지역이라면서 돈을 달랜다. 깡패들이 와서 또 자기 지역이라면서도 돈을 달랜다. 아내에게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교회에 간다.

여기서 목사 전요한을 만난다. 한국 사람이 어떻게 수리남에 와서 목사이면서 또 마약 두목을 하고 있는지! 수리남 대통령을, 물론 돈을 몽땅 주고서, 자기 마음대로 부려먹는다. 보통 사람은 아니다. 목사는 인구를 도와준 척 하면서, 인구 몰래, 인구의 홍어 속에, 코카인을 집어넣어 한국에 수출한다. 당국에 걸린다.

인구는 영창에 갇힌다. 이때 한국 국정원에서 인구더러 목사 전요한을 잡게끔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당한 후, 결국 마약 두목 목사를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인간 세상에는, 사람을 해치는 독사가 있는가 하면, 반면에 독사를 잡아먹는 고양이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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