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생각 - ‘맨하탄 탐험기’

2022-10-21 (금)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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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년전 네덜란드 사람들은 지금 돈으로 치면 20여 달러 상당의 구슬 몇 개를 원주민들에게 주고 천혜의 자연항구인 맨하탄 땅을 사들였다. 아마도 당시 이곳에 살던 ‘레나페’족 원주민들은 하늘이 인간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게 준 땅인데 사고팔고 할 필요가 있느냐 생각하고 백인들에게 기꺼이 땅을 내 주었을 것이다.

구슬 몇 개로 산 이 땅은 지금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이 되었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경제, 문화,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하는 월스트릿도 이곳에 있고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이곳에서 공연되며 전세계 음악인들의 꿈의 무대인 카네기홀도 이곳에 있다.

뿐만 아니라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1 월드 트레이드 센터 등 세계적인 랜드마크들이 만들어내는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가히 환상적이다.


이와같이 멋지고 대단한 맨하탄을 지척에 두고도 그동안 몇 번 가보지 못하였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이민생활의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18년 넘게 뉴욕 근교에 살면서도 맨하탄은 내게 아마존의 원시림처럼 늘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었다.

이제 나이 들어 시간의 여유가 생기자 드디어 뉴욕을 탐험해보기로 했다. 탐험 장비는 자전거 - 뉴욕까지의 교통편은 기차를 택했다. 뉴욕행 왕복 기차표는 시니어 디스카운트로 8달러에 끊었다.

기차역은 한국과 달리 개방형이기 때문에 계단만 올라가면 바로 플랫홈이다. 자전거를 끌고 기차에 오르면서 역무원에게 제지당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오히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자전거를 세워둘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있었다.

기차는 40분 만에 뉴욕의 펜스테이션에 도착하였다. 역 앞은 7번가와 32번가가 만나는 번화가인데 길 건너 32번가를 따라가면 감미옥, 포차, 정관장, 노래방 같은 낮익은 한글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을 시켜먹은 후 계속 페달을 밟아 5번가까지 가서 우회전을 하였다. 번잡한 큰 길이라 자동차와 보행자가 매우 많았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니 서있는 차들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신호에 걸려도 마치 수륙양용차처람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며 계속 나아갈 수 있으니 자전거는 맨하탄에서 아주 유용한 교통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하탄의 남쪽 끝이 가까워지자 여러척의 배들이 떠있는 바다가 보이고 곧 이어 맨하탄 남단 배터리파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는 뉴욕주 5개 보로(구)가운데 하나인 스태튼 아일랜드와 맨하탄간 17마일 바닷길을 운항하는 페리가 출항하는데 뜻밖에도 승선료는 무료였다.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내려 한시간 가량 자전거를 타고 돌아 본 후 다시 페리를 타고 맨하탄으로 넘어왔다. 바닷가 산책로가 보이는 아담한 공원 벤치에 앉아 길거리 포차에서 8 달러 주고 사온 닭고기 카레라이스를 저녁으로 먹었다. 음식냄새를 맡고 모여든 비둘기들에게 밥 한덩어리를 던져주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나니 기운 해가 벤치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둡기 전에 돌아가기 위해 펜스테이션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맨하탄 탐험 제1일차는 이렇게 저물어갔다.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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