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 활짝 열린 예술의 계절

2022-10-20 (목)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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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갇혀 산 느낌이다. 외출을 하자면 컨디션도 좋아야 하고, 마스크도 써야 하고, 지하철 탈 용기도 필요하고, 감염도 신경 쓰이고… 그런데 이제 모든 게 슬슬 풀리는지 반가운 전시회 소식들이 연이어 들린다. 나도 이제 움직이고 싶어진다.

첫 가을 외출로 퀸즈 대학에서 열리는 도자기 전시회로 달려 갔다. 이애숙 작가의 도자기는 아름다움만을 기준으로 접근하면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이 도자기들에는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스토리가 말을 건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달려가서 지난 번 전시회 이후의 삶의 변화를 더듬어 보았다.

‘Frozen’ 에서 작가는 차차 얼어오는 자신의 몸을 감당하며 눈물겨워한다. 눈물이 막 굴러 떨어지기 직전의 모습을 도자기로 빚을 수 있다는 걸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살아 있는 눈 같은데, 그러면서도 표정은 슬프게 담담하다. (우리 모두 이렇게 살지 않나!) 그런가 하면 어린이들 동화의 세계, 마치 요술 이야기에 나옴직한 따뜻한 병도 있다.꼭지가 긴, 큼지막한 할로윈 호박 같다. (이렇게 굽는 테크닉이 참으로 힘들다고 알고 있다.)

기기묘묘한 표정과 색깔과 텍스처의 두상들 중에는 머리 부분이 열린 것들이 있다. 두상이라 꽃병으로 쓸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열어놓았을까? 함께 갔던 지인이 그 이유를 한 번 써서 정리를 해보자고 한다. 어떤 분의 해석으로는 시쳇말로, 뚜껑이 열리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나로서는 하늘로만 열리는 작가의 존재 양식의 표현인 것 같다. 손을 내밀어도 마주 잡는 사람이 없으면 손이 필요 없고, 발을 딛어도 갈 곳이 없으면 발이 필요 없는 법이다. 마주 쳐다보는 얼굴도 없다. 그러면 마음에 담기고 머리에 쌓이는 것들을 소통할 수 있는 곳은 하늘뿐이다.

연세 드신 분들이 “책 몇 권은 너끈히 될 이야기”가 자기 인생이라고 하시지만, 실제로 쓰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식구들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그저 하늘에만 토로하다가, 마침내 그 이야기를 다 알고 있는 하늘로 자신이 옮겨 가버린다. 이해 받을 곳은 거기뿐이어서. 열린 머리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음에 들른 곳은 맨하탄 다운타운의 뤼미에르 홀에서 열리고 있는 크림트 특별전 ‘Gold in Motion’ 마침 유대인 기념일이라 부모나 선생을 따라온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움직이는 전시를 즐긴다.

제목에 ‘Motion’ 이라는 말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다.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 작품처럼 이 전시는 모두 움직이는 영상으로 되어 있다. 다른 점은 영상이 스크린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포함한 동서남북 모든 벽면에 펼쳐져 전개된다. 거기다가 전시실 안의 기둥과 구조물들도 모두 따로따로 독자적인 화면이 된다.

‘site specific art’ 가 그 특정한 전시 공간 만을 위한 작품이라면, 이 전시회는 ‘site specific digital art’ 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은 이 베뉴가 아니면 전시가 불가능하다.
알고 보니 이 디지털 아트는 2018년 프랑스에서 시작해 그 이름이 말해주듯 (Lumieres는 계몽주의라는 뜻) 반 고흐, 다빈치의 작품을 대중에서 흥미 있게 선보였다.

두바이, 보르도, 암스테르담 등지에 전시장을 열고 있는데, 한국은 유일하게 제주와 서울 두 곳에 전시실이 있다. 대한민국의 예술 사랑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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