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생츄어리 뉴욕

2022-10-19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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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츄어리(sanctuary)라는 단어는 평화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성지나 일종의 피난처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동물의 천국인 미국에서 동물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생츄어리로 진화했다.

몇년전, 아주 작은 방에서 갇혀 지내던 한국의 사자 가족과 사육곰 농장에서 구조된 22마리 사육곰이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생츄어리로 가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덴버의 북동지역 대평원에는 전 세계에서 구조된 야생동물들이 남은 생을 보낼 수 있는 휴식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세계에도 생츄어리가 있다. 불법체류자 보호도시(Sanctuary City)는 미국내 민주당이 집권하는 대도시들에서 시행하는 정책으로 불법이민자 보호를 위해 법원의 영장 없이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이나 구금에 협조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불체자의 개인정보조차 제공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게 되어있다. 2017년 국토안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만 해도 1,200만 명의 불법 이민자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불법적인 국경 밀입국을 아예 ‘침략(invade)’으로 정의했다. 그는 수백만명의 밀입국자들을 막기 위해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 공권력을 동원해 텍사스와 멕시코 국경 사이 장벽을 완성하겠다고 천명했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는 주요 도시에서 대대적인 불법 이민자 단속도 시시때때로 벌이곤 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은 체포된 불법 이민자들을 생츄어리 도시들로 보내버릴 법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천명한 적도 있다. 생츄어리도시 반대자들은 신원불명의 불법 난민들로 인한 범죄가 급증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하지만 현직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이다. 민주당은 트럼프 전 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뒤집고 현재 1100만명 정도의 불체자 대다수에게 합법적 지위를 주기 위한 법안을 끊임없이 제출하고 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의 2015년 자료에 따르면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였던 당시 월평균 1000명 이상의 추방 대상 이민자들이 매월 석방되고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지금은 어떨지 가늠조차 안 된다. 특히 뉴욕시는 민주당 텃밭이다 보니 트럼프나 공화당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에 가장 맹렬히 반기를 들었던 곳이다.

지난해 멕시코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텍사스를 통한 밀입국 문제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가장 큰 난제가 될 것 같다. 조만간 멕시코 접경 지역 불법이민자 수가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 가운데 텍사스 주지사가 불법 이주자들을 대거 전세 버스에 태워 뉴욕으로 이송해 버린 것이다.

현재까지 수만명을 뉴욕 등 동부 민주당 점거지역으로 보냈는데 뉴욕시장이 마침내 손을 든 모양이다. 뉴욕시가 불법이민자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이다.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텍사스 주지사가 불법이민자들을 버스에 태워 뉴욕으로 보내는 행위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럼 그동안 생츄어리라고 주장해왔던 뉴욕시는 뭐가 되는가? 인권천국 미국의 대표도시 뉴욕시는 불법이민자들과 난민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그대로 저버린다는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중간선거의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가뜩이나 총기사건, 반 아시안 범죄 등 뉴욕시는 흉흉한 사건들로 모두들 힘들어 하고 있는데...

뉴욕은 이제 더 이상 생츄어리 도시가 아니란 점은 분명해졌다. 동물의 존엄만도 못한 인권을 앞으로 뉴욕주민들이 얼마큼 더 참아내야 하는 건지 마음만 답답하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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