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센트럴 팍의 여성 3인

2022-10-14 (금) 민병임 논설위원
크게 작게
센트럴 팍 로브 보트 하우스 (Loeb Boat House)가 더 이상 물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10월 16일 문을 닫는다. 코로나19가 심해지자 2020년 휴업을 했고 작년 3월29일 재오픈 했는데 식품비가 오르고 인건비가 감당이 안된다는 것. 1954년 문을 열어 드라마와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 이곳이 68년만에 결국 주인이 운영을 포기했다.

차기 운영자가 나타나 새롭게 단장을 하고 내년 중 오픈하면 음식값은 현실에 맞게 엄청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문 닫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가보자 싶어서 토요일 아침 센트럴 팍을 가게되었다.

센트럴 팍은 길이 남북 4Km(59th~110th St), 동서 800m(5th~8th Ave)로 알다시피 참으로 로맨틱한 장소가 많다. 그런데 이곳에 2020년 8월에 공개된 미국 여성 3명의 동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19세기를 산 여성인권 선구자들 3인의 동상은 조각가 메러디스 버그만이 만들었는데 1920년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수정헌법 제19조가 통과된 지 100년 만에 세워진 것이다. 또 센트럴 팍에는 미국의 역사적 인물 22명의 조각상이 있지만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마더 구스’는 동화속 인물 조각상), 그러니 여성 동상이 세워진 것도 처음이다.

노란 단풍 든 나무들이 줄지어 선 도로 한쪽에 있는 동상의 받침대에 ‘WOMEN’S RIGHT PIONEERS-SOIOURNER TRUTH, SUSAN B ANTHONY, ELIZABETH CADY STANTON’이 새겨져있다.

앉아있는 왼쪽의 여성은 소저스 트루스(1797~1883). 뉴욕 스와트킬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노예로 태어나 1826년말 갓난아기 딸 소피아를 데리고 자유를 찾아 탈출했다. 뉴욕주 노예해방법이 시행되자 불법적으로 팔려간 아들을 찾고자 백인을 고소하여 승소한 첫 흑인여성이기도.

여성참정권과 인종차별 폐지, 노예 폐지운동에 앞장섰다.
트루스와 마주앉아 펜을 든 여성은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1815~1902). 미국 최초의 여권 집회를 주도한 인물로 ‘여성을 한 사람의 시민으로,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 여긴다면 여성은 다른 모든 구성원과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 어머니, 아내, 자매, 딸로서의 여성의 역할은 단지 부수적인 역할 뿐이다’ 며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서있는 여성은 수전 B 앤서니(1820~1906)다.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뉴욕에서 노예제 반대, 여성권리 쟁취를 위한 운동가, 저술가로 활동했다.
특히 1872년 11월5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헌법수정 제15조’를 제시, 투표참여를 강행했다.

여성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한 여성 참정권자인 것. 100달러의 벌금형을 부과 받았으나 지불을 거부, 재판까지 갔다. 변호사는 심판은 앤서니가 아니라 미국이 받아야 함을 호소했다.

이렇게 3명 모두 뉴욕을 중심으로 여성의 권익을 위해 활동했지만 아쉽게도 3명 모두 살아생전 여성 참정권 시행을 못보았다. 여성참정권자들은 줄기차게 여성의 투표권을 요구했고 1차 세계대전에서 여성의 활약을 보여준 결과 1920년 8월26일, 여성의 참정권이 현실화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여성 인권은 제 궤도에 올랐는가?
1992년 연방정부가 10월을 ‘가정폭력 인식의 달’로 선언, 지원과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나 했더니 이번 코로나 팬데믹동안 뉴욕가정상담소의 핫라인은 가정폭력 도움을 요청한 사례가 3배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또 미 전역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아시안 증오범죄 피해자의 95%는 여성이다. 여전히 여성은 폭력의 대상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다.

“여성들이 세상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자기 자신의 운명의 조정자이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정한다.” 등등 이들이 남긴 말들은 주옥같다.
깊어가는 가을, 센트럴 팍에서 뉴욕의 단풍을 즐기고 이 여성권익 개척자 3인의 행적도 살펴보자.

<민병임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