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 미류나무 길 석양아래서

2022-08-18 (목) 박사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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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무리 속에 황금빛 반짝이는 잎새들/ 강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미류나무 길을 걷는다/낮은 곳에서 시작한 고단함 속에서/ 숨차게 달려온 지난날 존재의 여백을/ 가슴으로 새기고 안으로 새겨 넣은 표지/ 나이테처럼 내 생존의 세월이여

세월의 무늬와 삶의 무게와 언어들/ 기울어진 황혼에 물들어가는 내 모든/ 생애의 흔적은 그리로 가서 묻히리/ 노년에 지는 석양노을이 슬프다/ 젊은 날 어둠속에 반짝이던 샛별같은 사념이여/ 헛되이 살아가는 길 끝이 있겠거니 하며/ 여기까지의 눈앞에 펼쳐놓은 채색의 형상들이/ 하늘 끝자락을 채우는 핏빛 물결처럼 보이네

아! 만상의 생명이여 어디로 가는가/ 녹색이 흔들리고 빛살이 부셔지는 미풍에/ 고지새 찾아들고 매미우는 청량한 소리/ 내 무상의 상념을 깨뜨리지마라/ 미류나무 길 둔덕아래 그늘진 곳에 앉아서/마지막 색감을 풀어 채색하는 노을의 캔버스/ 강하구 피안을 지그시 바라보네


살아온 모든 세월이 서서히 있는 대로 모두/ 어둠에 묻혀지는 삶의 아쉬움과 그리움/ 가슴에 묻어둔 사랑과 슬픔 하나쯤 왜없을까만/ 백거이 시인이 읊은 장한가/ 당나라 현종이 그리워했던 정인 양태진(양귀비)/ 목맨 양귀비의 비애가 오로지 사랑만이었을까?

모든 것이 거기 한 곳에 묻혀지는 운명이여/ 이제는 무상의 노을이 슬프다/ 아아, 끝의 암흑이 따라오는 저녁나절 이내/ 이 생령이 유체이탈하는 밤길을 동행하려나

<박사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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