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한국 정치와 싱귤래리티

2022-08-17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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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요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당 대표였던 젊은 정치인 이준석 사태로 연일 시끄럽다. 그와 관련한 보수 여당의 모습을 보면서 싱귤래리티(singularity)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게 된다.

싱귤래리티는 변곡점이나 특이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폭발적 성장 단계로 진입하는 변곡점이나 전례 없는 기존의 패턴과 조건을 뛰어넘어 질적 도약이 생기는 특정 시점을 뜻한다. 최근 한국에서 정치가 이런 특이점을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이준석은 수년전 30대의 젊은 나이로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 힘) 최고위원으로 시작, 국민의 힘 당 대표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정치인이다. 그는 늘 활발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10년간 살다가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해외에서 2년간 학교를 다닌 후 한국에서 서울 과학고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에 다니다 하버드 대학으로 옮겨 컴퓨터과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말을 아주 잘하는 재주가 있다 보니 한국의 시사프로그램 등에 자주 초대돼 앳된 얼굴로 꽤 어려운 정치현안들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곤 해서 각광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발굴한 신인으로 그가 지난해 현 여당 대표로 당선된 것은 적지 않은 돌풍이었다. 한국 정치사상 30대 첫 제일 야당 대표라는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 파격적인 소식에 당시 외신들도 대선 승리를 위해 젊은이를 선택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그 소식에 일부에서는 그가 정치권의 쇄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반겼지만, 한편에서는 그가 경험 부족으로 우려를 표하는 부류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다는 말이 실감나는 현실이 되었다. 젊은 혈기로 가득 찬 그가 한국 정치판의 싱귤래리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얼마전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의원에게 ‘내부총질’ 하는 사람이 있다는 취지로 문자를 보낸 것이 사진기자에게 노출됐다. 화가 난 이준석은 윤 대통령이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보낸 문자가 국민의 손가락을 받고 있다고 꼬집으며 이는 “당의 위기가 아니라 대통령의 지도력의 위기”라고 대놓고 비판했다.

국민의 힘 젊은 의원들은 젊은이를 대변하는 아이콘 이준석을 왕따시킨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서 가뜩이나 지지율이 낮은 여당의 분열은 더욱 심화돼 버렸다.
현직 대통령의 사적 메시지가 공개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어쩌면 전 국민이 하루 종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일급기밀이나 다름없는 대통령의 의중이 그대로 전국민에게 생방송되는 나라, 역시 다이내믹 코리아라고밖에 할 수 없다. 여당 대표를 향한 감정 섞인 표현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으니 일정 부분 비밀로 포장되어야 할 대통령의 권위도 손상되고 말았다. 투명성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것은 국가원수의 위치에서는 아무래도 좋을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국민의 힘이 애초 이준석이라는 젊은 지도자를 당 대표로 선출한 시도는 신선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어쩔 수 없는 임시방편이 아니었을까. 국민들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뽑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듯이 정당의 지도자들도 그 모임의 수준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여당과 야당 다 마찬가지고, 이 원리에서 모두 자유로울 수 있을까.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최소 1년 정도는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으로부터 따뜻한 응원을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또 대부분 그래왔다. 그런데 지금 전례 없는 노 허니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야말로 자신들이 보수라고 지창해온 사람들이나 그들을 대변하는 지도층 모두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좀 깨달아야 할, 이른바 싱귤래리티 시점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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