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웨체스터이야기 - 인디언과 차이니즈

2022-08-11 (목) 노려/전 한국일보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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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시코 공원묘지( Kensico Cemetery)에 갔었다. 퀸즈에서 오래 사신, 80년대부터 잘 알고 지낸 지인이 이 곳에 묻히셨기 때문이다.

정식 명칭은 그냥 ‘ 캔시코 세미터리’라고 되어있지만, 나즈막한 언덕들이 구비치는 넓은 대지에는 나무가 많고 곳곳에 분수까지 있어서, 우리 한국인의 정서로는 공원묘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 지역사람들에게 ‘캔시코’라는 말은 아주 친숙하다. 웬만한 카운티 행사가 주로 ‘캔시코 댐’ 플라자에서 열리며 경치 좋은 ‘캔시코 저수지’와 워낙 유명한 ‘캔시코 세미터리’가 있기 때문이다.


‘캔시코’는 이 지역에 살던 인디언 부족장의 이름 ‘코켄 세 코(Coken Se Co)’에서 따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지역에 인디언 언어로 된 지명이 참 많다.

거의 매일 오고 가는 타코닉(Taconic) 파크웨이, 타카닉 호수(Lake Taghkanic) 그리고 지금은 마 리오 쿠오모로 바뀐 타판지 브리지, 와핑거 폭포 또 싱싱 감옥(이 지역에 살던 Sint Sinck 인디언에서 나온 말)이 있는 타운 오시닝, 클린턴 부부가 살고 있는 챠파쿠아 등의 이름이 모두 원주민 언어가 조금씩 변형된 것이다.

무심코 접했던 이 지역 명칭들이 원주민들의 언어에서 왔다는 걸 새삼 의식한 것은, 몇 년 전 대통령 후보자가 백인 우월주의에 아첨하느라 남미 이민자들을 범죄자 마약거래자 강간범으로 몰아 부칠 때였다. 따라서 백인들이 원주민을 야비하게 몰아 냈으며 평화스런 추수감사절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라는 걸 알게 된 때다.

미국 원주민에 대한 역사는 거의 없다. 그나마 디즈니 영화로 알게된 ‘포카 혼타스’ 정도다. 사랑이야기처럼 꾸며진 인디언 추장의 딸 포카 혼타스의 실제 이야기는 기구하다. 역사는 강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말에 실감이 간다.

그 날, 지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찾아 간 캔시코 묘지에서 플러싱에서부터 온 장례차를 뒤 쫓아간 장소는 도로 건너편에 있었다. 새로 확장했다고는 하지만 이미 많은 땅이 차 있었는데, 그 넓은 지역을 채운 비석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99퍼센트가 중국 이름이었다. 대부분이 아예 한문으로 쓰여 있었다.

아니 어떻게, 차이나타운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국인이 많은 플러싱 지역도 아닌, 부자 유대인들이 산다는 웨체스터에 이렇게 많은 중국인이 아하, 여기가 명당자리라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일찌감치 명당자리를 찾아 땅값이 쌀 때 다 사두었다는 것이다. 아니 지금은 비싼 땅도 다 현금으로 사는 그들이다.

캔시코 세미터리는 맨하탄에서 기차로 올 수 있는 곳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초기에는 주로 뉴요커들이 묻히기 시작한 이 곳에는 배우 로보트 드 니로의 부모서부터 세르게이 라프마니노프 등 문화계의 유명 인사들이 많다.

평화롭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땅에 유럽인들이 쳐 들어와 자리를 잡았는데 지금은 막무가내로 밀려 들어오는 중국인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느낌이 확연해진다. 언젠가는 중국인들이 미국의 역사, 아니 세계 역사를 5000년 만에 다시 쓰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인디언 이름의 묘지에 중국인들과 함께 하신 지인의 영원한 평온을 빈다.

<노려/전 한국일보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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