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7일, 뉴욕주 스태튼아일랜드 지방법원의 ‘랄프 포르지오(Ralph Porzio)’ 판사는 “영주권자와 비자를 소지한 외국인 노동자, 불체청소년추방유예(DACA) 수혜자들이 뉴욕시 지방선거에서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뉴욕시 조례는 뉴욕주의 헌법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비시민권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려면 주민투표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도시, 우리 선거권’이라는 이름의 이 조례는 작년 12월에 뉴욕시의회를 통과했다.
이번 판결로 뉴욕시에 등록된 유권자 약 490만 명의 16%, 즉 80만 명에 달하는 합법적 이민자들에게 추가적으로 선거권을 부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뉴욕시의 조치는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포르지오 판사는, 상위 법인 뉴욕주 헌법 제2조 1항의 조문 ‘모든 시민은 선거권을 가진다’에서 일컫는 ‘시민’은 오직 미국 시민권을 가진 주민에게만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링컨 대통령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티즈버그 연설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반복된 ‘국민’이란 주권을 행사하는 수단인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 세계 최강대국을 이룬 미국에서 ‘국민’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옳은 걸까?
미국 연방헌법의 원문 그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해답은 없다. 이유인즉슨 미국 건국 당시 주권을 가진 각 주들이 모여 연방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연방헌법에 선거권의 주체를 논의하는 자체가 주에 대한 내정 간섭으로 비쳐 그런 내용을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각 주에 맡겨졌던 것이고, 당시 대부분의 주는 땅을 소유하고 세금을 내는 백인 남성들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였다. 그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재산이 없는 백인 남성, 남북전쟁 후에는 수정헌법 제14조와 15조를 통해 흑인 남성, 수잔 앤서니(Susan B. Anthony)와 같은 여권 운동가들의 헌신으로 제정된 수정헌법 제19조를 통해 여성에게까지 참정권이 점차 확대되었다. 그러다 더욱 민주주의가 신장하면서 인디언 원주민과 아시안에게까지 범위가 넓어졌던 것.
이처럼 미국 역사는 건국초부터 선거권에 대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선거권은 늘 중요한 시대적 담론이었다. 시대를 넘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민 국가의 정체성에 맞게 항상 더 많은 사람에게 권리를 주는 방향으로 흘러왔고, 이들이 모두 힘을 합쳐 오늘의 최강대국 미국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판결은 역설적이게도 이민자의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선거에서 배제되는 모순을 노정시켰다. 법안 지지자들은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고 내세우며 독립전쟁까지 불사한 미국 땅에서, 그것도 21세기에, 납세의무는 부과하면서도 합법적 이민자로서의 최소한의 방어 장치-즉 지방 선거권조차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건국 이념뿐 아니라 국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법안 반대자들은 배심원과 국방의 의무가 없고, 언제 미국을 떠날지 모르는 이민자들이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위해 올바르게 선거권을 행사하겠냐면서 이들의 선거권 부여에 기를 쓰고 반대한다. 그래서 위헌소송을 제기 했던 것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의 수는 전체 인구의 13.7%인 4,500만 명 정도이고, 이 중 77%인 약 3,500만 명이 합법적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미국 시민이냐 아니냐 하는 시대적 담론을 두고 200년 전이나 오늘이나 찬반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이민국가 특유의 미국식 민주주의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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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