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 나를 속인, 존경하는 두 사람

2022-07-14 (목)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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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공부한 사람들은 혜능대사(638-713)가 누구인가를 알고 있다. 혜능은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이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서 먹고 사는 지게꾼이었다. 어느 날 여관에서 나무를 팔고난 후, 땅바닥에 잠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이때 어느 스님이 금강경을 소리 내어 독송하고 있었다.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는 말을 듣고서 혜능은 금방 깨쳤다. “어찌 자성이 본래 청정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생명 없음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음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움직임이 없이 능히 만법을 냄을 알았으리라” 그는 5조 홍인대사에게 가서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6조혜능대사가 되었다. 혜능대사 덕분으로, 선불교가 중국 전국에 퍼지기 시작했다.
무식한 혜능이, 금강경의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는 구절을 듣고서 단박에 깨쳤다면, 나는 적어도 책을 읽을 줄을 안다. 학교에서 배운 실력이 혜능 보다는 더 낫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혜능이 깨쳤다면, 나도 불교공부를 조금만 할 것 같으면, 금방 깨치겠구나,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내가 속은 것이다. 1970년 중반부터 불교 참선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도를 깨치지 못했다. 내 스스로 혜능한테 속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혜능대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혜능대사에게 속고 홀렸기에, 나는 지금도 불교에 흥미를 갖고서 참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나를 속인 사람은 일본 시인 시바타 도요이다. ‘ 시바타 도요 ’ 하면? 한국사람들은 그녀가 누구인줄을 모른다. 하지만 90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서 100세 때 그녀 시집이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팔린 여자라고 하면, “아, 그 여자! 나 알고 있지!” 한다. 나는 80세에, 2017년 가을부터 시 공부를 시작했다.

시바타 도요가 9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면, 나는 적어도 시바타 도요보다 10년 더 젊게 시공부를 시작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도 장래가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갖고 시작했다. 이게 또한 속은 것이다. 공부하다 보니까, 좋은 시라는 게 그리 쉽게 써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5년이 되어서야 겨우 한국의 ‘시문학’ 월간지를 통해서 시인이 되었다.

시바타는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라고 말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하는 말이 참 멋있다. 우리는 과거에 살지 않는다. 항상 현재에 살아있는 게 인간이다. 늙어서 ‘지금 이 순간은’ 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이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항상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바타 도요는 시를 쓰면서 인생을 살았었다.
나의 노년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혜능 대사하고 시바타 도요에게 감사드린다. 나의 여생은 불교공부하고 시 공부다. 만인에게 도움이 되는 불교의 지혜를 시로 쓰는 게 나의 꿈(Dream)이다.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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