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술사(術士)의 시대

2022-06-24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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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대선 운동 때는 ‘조용히 내조만 하겠다 ’더니 최근 폭넓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넥스트 리서치가 SBS 의뢰로 지난 8일~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 대통령 내조에 집중하라 ”는 여론이 60.6%로 공적활동에 부정적이다.

그런데 평소 대통령 부부와 친분 있는 역술인 천공이 개인 유튜브를 통해 “정치는 영부인이 해야 국익에 엄청난 길을 열어간다.” 고 한마디를 던졌다.

때맞추어 tvN 한국드라마 ‘환혼’ 이 지난 18일부터 방영을 시작했다.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을 배경으로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로 인해 운명이 비틀어져 버린 사람들 이야기다. 대호국의 권력자이자 세도가들은 최고의 술사들이다. 이들은 장씨 집안, 서씨 집안, 박씨 집안들로 내노라하는 술사들이 대결을 벌인다.


대호국 장씨 집안의 도령 장욱은 천하제일 살수인 낙수의 혼이 깃든 무덕을 자신의 기문을 열어주고 술법을 열어줄 스승으로 점찍는다. ‘환혼’은 금지된 사술 환혼술을 소재로 한 판타지 드라마인데, 마치 대한민국이 술사의 시대를 맞은 듯하다.

한때 1770년대 조선에 고통스런 백성들의 삶에 희망을 안겨준 예언서 ‘정감록(鄭鑑錄)’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적이 있다. ‘ 정씨 성을 지닌 진인(眞人)이 양반 놈들의 조선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여는 왕이 된다’ 는 것이다.

정감록이 약속한 구원의 땅은 남쪽 지방인 지라 계룡산 언저리, 삼남 지방의 수많은 길지를 찾아 답습하는 술사들이 많았다. 1782년 12월 정감록 사건으로 수많은 술사들이 역모죄로 죽었다. 풍수와 점술의 대가들이었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새날은 결코 오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한국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신년 운세 상담이나 대선을 앞두고 역술인들을 찾아가고 있다. 심지어, 뉴욕 타임스에 한국 정치인들이 이들을 찾아가서 “조상의 묘를 이장하면 선거에 이길 수 있는 가’ 물어보았다는 기사가 난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술사를 멀리 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1980년 카터 대통령 시절 공화당 대선후보 레이건의 부인 낸시는 평소 운명론에 관심이 많았다. 샌프란시스코 유명 점성술사 조운 퀴클리에게 남편 레이건과 카터의 운세를 봐달라고 했다. “ 카터는 절대 레이건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1985년 제네바에서 열린 소련 고르바초프와의 정상회담 날짜도 이 점성술사가 11월9일을 길일로 잡았다는 등 낸시가 미국의 정치와 군사 결정을 좌지우지한다고 미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한 적이 있다. 영국의 처칠과 드골, 스탈린과 히틀러도 주위에 점성술사가 있었다고 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자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과학적 예측 시스템에 대한 불신, SNS 확산의 반작용으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 초반 출생 세대)를 중심으로 점성술(Astrology)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이비 과학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수많은 팔로어와 상관없이 외로운 밀레니얼 세대들이 정치적 혼란, 글로벌 경제위기. 기후변화, 핵전쟁 공포 등등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일시적 위안과 희망을 주는 점성술로 도피하는 것뿐이다.

역술인들은 사주명리학과 관상을 보는 자신들은 무속인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정치가와 기업인들을 만났다고 하자. 과연 이들이 살아있는 권력과 금력 앞에 “앞으로 감옥 갈 팔자요." 하는 말을 할 까? 그저 두루뭉술 하게, 여러 가지로 유추 및 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말을 늘어놓을 것이다.

잡술(雜術)을 좀 하는 도사 앞에 이용당하지 말고,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정한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건전하다. 우리는 그저 중국 식당 포천 쿠키 속 오늘의 운수나 신문의 오늘의 운세를 한번 슬쩍 보고 바로 잊어버리자. 그 어떤 인간도 자신에게 닥칠 행운과 불운을 미리 알 수는 없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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