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다정한 말 한마디

2022-06-0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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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4일 텍사스주 유밸디 지역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로 21명을 살해한 범인은 중학교 때 말더듬이에 발음이 짧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마약중독자 어머니 집을 떠나 몇 달 전에 할머니집으로 온 총격범은 18세 생일이 지나고 합법적으로 총과 탄환을 구입했다.

학교에 장기간 결석을 했고 졸업 자격을 얻지 못한 그는 가장 먼저 할머니 얼굴을 향해 총을 쏘았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할머니가 경찰에 신고했다. 어머니와 사이가 안좋은 손자에게 할머니도 공부 못하고 사회적응도 못한다고 야단치고 소리만 질렀을까? 그래도 음식을 차려주고 몇 달간 돌보아주었는데, 할머니의 사랑이 부족했던 것인가.

사건 현장에서 경찰이 쏜 총에 사망한 그는 학교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사회와 단절된 외로운 늑대형 범죄라는 추정도 나왔다.
지난 2017년 9월29일 브롱스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학생간 칼부림으로 1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명이 중태에 빠진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학교내 살인사건이 뉴욕에서 25년 만에 발생했다고 뉴욕 시 전체가 충격에 빠졌었다. 가해 학생이 피해학생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왔었다.
그때는 칼이나 박스 카터가 무기이고 범행 대상이 자신을 괴롭힌 사람이었다. 불과 5여년이 지난 지금은 총기가 무기이고 상대는 불특정 다수로 확대되었고 학교내 총기사건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한편, 예술 작품 속에 나오는 왕따나 비정상인이 일으키는 살인 사건은 수없이 많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는 아랍인에게 우발적으로 총을 쏜 뒤 판사에게 “태양 때문에 그랬다”고 말한다. 그는 보통사람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하는 외톨이, 즉 이방인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있다. 1860년대 러시아 소도시에 사는 졸부 표도르 카라마조프가 어느 날 살해당한다. 아버지와 잦은 갈등을 일으킨 세 아들이 살인혐의를 받는다. 진범은 막내이자 사생아인 스메르자 코프, 그는 차별대우하는 아버지에게 평소 적개심을 지녔다. 첫째는 재산문제, 여자문제로 살의를 갖고 있었고 둘째는 막내에게 은근히 살인을 사주했으며 셋째는 수도원에서 신앙의 길을 걷는 진실한 청년이다.

이렇게 결손가정이나 외톨이를 다루는 예술작품은 무수하다.
현실에서는 가난한 조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이들도 많다.
르네상스 시대 탁월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1475~1564)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 천지창조’, ‘다비드상’, ‘피에타상’ 등의 걸작을 남겼다. 그는 6살에 어머니를 잃고 유모 손에 자랐다.

청소년기에 공방동료와 주먹다짐 끝에 코뼈가 주저앉아 줄곧 ‘못생긴 놈’이란 자괴감을 갖고 살았다. 평생 독신에다가 동성애자로 놀림 받던 그가 얼마나 눈부신 예술 작품을 남겼는가.

외톨이들은 스스로를 냉골 속에 유폐시킨다. 세상과는 무관심, 냉소 분노가 쌓여있다. 내면에 쌓인 분노와 절망이 터져 나올 때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가해자의 부모는 ‘말하지 않아서 몰랐다.’ ‘그런 아이가 아니다’고 말한다. 평소 아이의 자신감 없는 행동에 무심했고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은 책임이 있다.

온기가 없는 환경에 사는 아이들은 정을 나눌 사람이 없다. 사회에 나갈 자신이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고 해서 죄를 지어선 안된다. 그전에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난 날, 미국에서 대형 총기사고를 일으킨 한국계 학생은 대부분 학교에서 외톨이였고 오랜 기간 놀림을 당해 왔다고 한다. 2007년 버지니아 공과대학 조승희가 언어문제로 그랬고 2012년 오이코스 대학 총기난사 고씨가 집단따돌림을 받았다.

목 마를 때 물 한잔 주는 소박한 그 사랑이 남을 구한다. 자신을 구한다. 홀로 있는 그대에게 다정한 말 한 마디 걸어주고 미소 한 번 지어주는 일, 별로 어렵지 않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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