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생각 - “사랑해요, 권사님”

2022-05-06 (금) 김영란/두리하나 USA뉴욕대표·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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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탈북자 선교를 시작할 때부터 20여 년 가까이 오랜 세월 변함없이 내 곁에서 탈북 자녀들을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과 기도로 돌봐 주시는 분, 권사님이 몇 달 전부터 바이러스와 감기가 겹쳐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셔서 자녀들의 정성 지극한 보살핌으로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셨다.

그러나 몇 달 전에 잃어버린 입맛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아 식사 때마다 여간 힘들지 않다는 말을 전화로 듣고 나는 무슨 음식을 드시고 싶은 지 미안해 하지 말고 말하라고 했더니 겨우 하는 말씀이 있다.

처음 우리가 탈북자 선교를 시작할 무렵 일주일에 한 번씩 기도 모임을 했을 때 내가 밥 당번을 하겠다고 나섰었다. 우거지탕을 하거나 양상추 된장국을 하거나 김치 콩나물국을 만들어 내었고 밑반찬은 김치나 겉절이 한 가지뿐이었는데도 얼마나 맛있게 식사들을 하는지 …. 그런데 몸이 많이 수척해진 권사님이 그때 기도팀들과 같이 먹던 우거지국, 양상추 된장국, 김치 콩나물국이 너무도 드시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손자, 손녀들 학교에 보내고 낮에는 시간이 많은 여집사와 오랫동안 꽃집을 경영하다가 이즈음 상승한 렌트비 때문에 쉬고 있는 꽃 제자 집사도 같이 불러내었다. 차로 권사님 댁으로 가다가 마트에 들러 큼직한 배추 한 포기와 살이 보기 좋게 붙어 있는 자그마한 소갈비 뼈 서너 개와 양파, 대파, 매운 풋고추 몇 개를 사가지고 갔다.

나는 빠른 솜씨로 소뼈는 찬 물에 담가 몇 번이나 핏물을 헹궈내고 조금 큰 냄비에 물을 붓고 소 뼈를 담아 중간불에 올려놓았다. 배추 겉잎은 다 떼어서 다른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이다가 소금을 조금 넣고 어느 정도 삶아진 뒤에 건져서 놓았다가 한 두 시간 갈비살이 익은 냄새가 구수하게 날 때 삶아 건져 놓은 배추 겉잎을 큼직큼직하게 썰어 갈비 국물에 넣고 끓였다.

팔팔 끓는 갈비 국물을 한 공기 떠내어 고춧가루 조금, 국 간장 조금, 참기름 한 스푼 그리고 대파, 양파, 풋고추를 어슷어슷 썰어 넣고 슴슴하게 간을 보면서 그리 맵지 않게 팔팔 끓여내었다. 마지막에 꿀 한 스푼을 넣고 촉촉한 밥과 함께 상을 차려 드렸다. 그날 배추국이 칼칼하여 맛이 있다며 식사를 많이 하셨다.

둘째 날은 물오징어 넣은 양상추 된장국을 끓여드리니 ‘오늘이 내 생일인가’ 하시면서 얼마나 맛있게 드시는지 몰랐다. 얼마 전 까지도 병원에서 돌아가실 것 같다고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많이 울었었는데 지금 또 이렇게 건강하게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맛있게 드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권사님 댁 부엌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울다가 나왔다.

다음에는 김치 콩나물 국을 해드릴 숙제가 남았다. 권사님, 부디 건강하게 벌떡 일어나셔서 우리 탈북 자녀들이 열심히 사는 것을 보면서 많은 기도와 격려를 아낌없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영란/두리하나 USA뉴욕대표·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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