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인민의 나라

2022-05-04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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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헌법 서문의 첫 문장은 "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로 시작한다. 번역하면 우리 미국 국민은...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계 모든 민주공화국의 모토일 만큼 유명한 이 문장은 미국 여권의 서명 페이지에도 들어있다.

대한민국은 미국 민주주의를 정통으로 학습한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이다 보니 헌법 전문의 영문판도 "We, the people of Korea…"로 번역되면서 시작한다.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은 한때 백악관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로도 유명세를 탔다.

2011년에 오바마 행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만든 청원사이트였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때 이를 폐쇄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한국에서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이 부활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한국형 '위 더 피플'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30일간 20만명 이상이 추천하는 청원에 대해서 청와대나 각 부처 및 기관의 장이 답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임기 만료일인 5월 9일에 운영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피플, 인민 하는 것은 공산주의 정권에 가면 더하다.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어명에도 피플을 확연하게 붙여 놓았다.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에도 피플, 미국에도 피플이 주인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두 나라의 인권 수준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를 수 있을까.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중화인민공화국도 역시 인민이란 단어가 들어있다. 자신들의 사회주의를 파괴하는 국내외 적대 세력과 반드시 투쟁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People's Republic of China는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영문명이다.

대한민국의 공식적 영문 명칭은 'Republic of Korea'인데, 분명 People이란 단어가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는 '민'이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굳이 영문에는 넣지 않은 것이다. 말로만, 무늬만 인민을 위하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인민’이 빠진 것은 아마도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국민들을 위하고 국민들과 함께 공화국을 완성해 나가자는 의지가 반영된 것일까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구에 있는 국방부 청사로 이전한다고 한다.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에 따르면 며칠 후면 거행되는 취임식에 맞춰 청와대는 전부 개방될 것이라고 한다. 일일 최대 3만9,000명의 일반인들이 청와대 경내를 방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청와대’란 명칭은 ‘푸른 기왓장으로 지붕을 얹은 건물’이란 뜻과 미 대통령의 집무실 화이트하우스인 백악관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과의 소통망이라는 청와대 ‘위 더 피플’ 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청와대 이전을 반대하는 청원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여러 이전 후보지를 놓고 제기되는 경호와 보안 우려에 꽤 시끄러운 공방이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 이전은 윤석열 당선인의 가장 큰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는 설명에 더 이상의 논란은 사라진 것 같다.


어쨌든 청와대 부지를 100%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이미 정해졌으니 그건 그렇다고 쳐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용산 새 대통령실의 명칭을 `피플스 하우스`로 제안한 것은 과연 국익과 어떤 관계일까.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 팀장은 새 집무실 명칭 관련 공모를 받고 있는데 며칠만에 1만 건이 넘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한다. 어느 정권이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이름같은 표면보다는 오히려 정책에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실질적이지 않을까.

오는 10일 한국은 새 대통령 취임식을 갖는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윤석열 당선자 팀은 왜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신들을 선택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았으면 한다. 묵직하고 많은 짐을 싣고 가는 수레는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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